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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의 여론마당]
文대통령과 흥남철수…금순이…국제시장

[권영수의 여론마당]
文대통령과 흥남철수…금순이…국제시장

창원일보 | 입력 : 2017/07/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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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참사랑 봉사회 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버지니아주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 했다.
 


흥남철수 작전에 참전한 노병들을 만나 당시 미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삶은 없었을 것이라며 90도의 허리를 굽혀 위로와 감사를 표했다.
 


당시 아시아 태평양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Macarthur.d.s)는 남한 전체가 점령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인천상륙 작전을 개시할 수 있도록 미국 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간청했다. 어렵게 승낙을 받아 1950년 9월 15일 미 10군단 1사단의 병력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이후 1950년 12월 12일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과 혈전을 펼쳐 압록강을 거쳐 북한의 임시 수도 강계 인근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12월 하순경 개마공원 장진호에서 12만여명의 중공군에게 포위당하게 되자 후퇴를 하게 된다. 장진호 전투에서 약3,000여명에 가까운 미군 전사와 1만 2,000여명의 미군ㆍ국군ㆍ연합군 등 실종ㆍ사망자를 비롯해 영하 30도의 혹한에 많은 군인들이 동상으로 손발을 잘라야 했다.
 


당시 흥남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메레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 레너드 라루 선장(2,001명 사망)은 흥남부두에서 피난민 9만 8,000여명과 군인 10여만명 등 총 20만여명에 가까운 피난민과 군인들을 싣어나르기 위해 탱크 등 모든 무기를 배에서 끌어내렸다고 한다.
 


미군과 한국 해군의 190여척의 화물선ㆍ유조선 중에 메레디스 빅토리 유조선 등에 겨우100여명 정원에 1만 4,000명을 승선시켜 먹을 식량은 바닥이 나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 2박 3일간 항해 중 메레디스 빅토리 호에서 5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메레디스 빅토리호 선원들은 첫 번째 아기 탄생을 김치 1호로 시작해 김치 5호로 각각 명명했다고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도 그 배에 승선해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해 3년뒤 1월에 문대통령이 출생했다고 알려져있다.
 


흥남부두에서 탈출한 피난민들을 떠올리며 박시춘 선생이 작곡하고 현인 선생이 불렀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가사를 적어 본다.
 


1.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2.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히 떴다
 


현인 선생(본명 玄東柱)은 6ㆍ25전쟁 당시 부산 영도다리 건너 항구 다방에서 차를 마시던 중 문득 창밖에 정박해 있는 배에 금순이라는 낙서를 보고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애인 금순이를 찾아 헤매는 한 사내의 처절한 감정에 대한 영감(靈感)이 떠올라 굳세어라 금순아(조금순 趙錦順)라는 노래를 부르게 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모 영화 제작사는 노래 가사의 스토리와 달리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제작했다. 2015년 12월 17일 첫 개봉 이래 당시 전ㆍ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대표ㆍ시민 등 개봉 한달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6ㆍ25 전쟁과 흥남철수 피난민ㆍ빅토리호 승선ㆍ부산 피난시절ㆍ장사치기ㆍ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ㆍ베트남 전쟁ㆍ이산가족 찾기 등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정치적인 색이 깔려있다. 필자를 비롯해 당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관람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 이유는 필자가 전쟁이 끝나고 13년 후에 아주 어린 나이에 일가 친척도 없는 부산으로 내려가 며칠간 굶고서 국제시장 인근 식당, 잡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그 후 노점상 장사치기로 시작해 남포동 골목가에서 잠시 정의를 위한 야인생활(野人生活)을 하게 된다. 필자가 장사치기를 했던 그 장소가 바로 국제시장 영화 촬영지 꽃분이 가게 바로 옆이다. 그 시절에 영화 촬영을 했더라면 필자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컷의 인물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것은 꽃분이 가게 옆인 데다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학을 못하는 청소년을 위한 생활 수기 공모라는 방송을 듣고 응시해 운이 좋았든지 장원으로 뽑혀 그 상금으로 평소에 관심을 가져왔던 고아원에 기탁했다는 사실이 방송국을 통해 전파돼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모 학교를 운영하는 관계자들이 찾아와 필자를 특채로 등록금 면제로 입학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필자는 아주 어린시절에 객지로 뛰쳐나와 청소년을 거쳐 생일없는 소년으로 성장했다. 성인이 돼 유신정권과 신군부를 거쳐 몇번의 죽음의 문턱의 길을 걸어오면서 대학원에서도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정의로운 인생, 삶과 죽음이란 인생철학(人生哲學)을 몸소 터득해 많은 사람들께 전파하고 있다. 또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국가와 사회 약자들에게 작은 유익을 주기 위해 오늘도 정신적인 힘을 연마(鍊磨)해 끝없는 고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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