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죽는다는 것박성환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그러자 광대는 칼로 목을 자르면 너물 아플 것 같고 먹을 매달면 넘 답답할 것 같으니 늙어 죽게 해달라 하였다. 폭군인 왕도 기와에 한 약속을 어쩔 수 없어 집에 가서 늙어 죽으라는 은총을 내렸고 그 광대는 당장의 죽음을 면해 늙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일생을 살다가 죽을 때는 각각 여러가지 다른 모습의 죽음을 맞게 된다. 그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복 받은 죽음은 천수를 누리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와석종신(臥席終身)하는 자연사일 것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신체가 점점 쇠약해지고 생리적 기능이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퇴행하여 생명이 저절로 사르라지는 모습, 마치 연탄물이 다 타서 불꽃이 점점 사위어지고 오롯이 연탄재의 형해(形骸)만 남는 것과 같은, 그야말로 생명의 불꽃이 조용히 잦아드는 모습, 그것이 늙어 죽는 것일 게다.
사십대 중반이 되면 어느날 글을 읽다가 갑자기 글의 행간이 흐트러지면서 눈이 침침해지고 글자가 흐릿해 보이는 때가 있다. 안과에 가 보면 노안(老眼), 늙은이의 눈이라는 진단이 내린다. 노안은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첫 단계의 징조여서 바로 코앞에 다가온 노년에 누구나 심적 충격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신체의 기능이 점차적으로 상실돼 가다가 종내는 그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속에 나름대로의 자연의 한가지 풂이 함축돼 있는 것은 아닐까. 신체의 모든 기능을 단번에 끊는 것은 갑자기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횡사(橫死)라고 한다. 세상과의 인연을 이렇게 단번에 갑자기 끊는 것은 인간에게 너무나 가혹한 비극적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노년에 접어들어 세월이 갈수록 무엇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차츰 하나씩 잃어가는 것,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지고 손에 쥔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젊은이들이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고… 이렇게 세상인연과 차츰 멀어져가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그때는 이미 죽음에 馴致(순치)돼 충격이 줄어들어 조용히 눈 감을 수 있으리라.
우리는 태어날 때는 두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두 손 활짝 펴고 죽는다. 꽉 쥔 주먹은 움켜쥐는 욕망을, 주먹을 펴는 것은 욕망의 놓음을 뜻하는 것이다. 꽉 쥐었던 주먹은 나이 들수록 점점 펴지고 손을 놓아가는 지혜를 익혀간다.
사람의 일생은 다른 말로하면 태어날 때 꽉 쥔 주먹을 펴가는 과정, 즉 욕심과 탐욕과 집착을 하나씩 버리고 종내는 빈 손, 빈 마음이 되어 세상과 이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난 병에 걸리지 않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자연사를 맞는다면 그것은 천수를 다하고 대자연에 동화하는 것이며 천연심(天然心)으로 돌아가는 적멸(寂滅)이 될 것이다.
이 모두를 자연의 이치려니 생각하고 세상사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지혜를 기른다면 인생살이는 더욱 아름다눈 것이 되지 않을까. 자연의 흐름의 법칙에는 에누리 없는 `시간의 낫(Tlme`s Scythe)`에 베이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모두 생(生)하면 멸(滅)하는 것. 죽음에 임해 치르는 장례의식은 단순히 죽은 이의 부재를 알리는 형식이나 절차만이 아닐 것이다. 엮어온 삶을 마무리하고 알 수 없는 우주의 흐름 속으로 떠나 보내는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이별의식이라 생각하면 옷깃이 저절로 여며진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관조는 루이 14세 때의 궁중광대가 말하는 `늙어 죽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는, 뿌리로 돌아가는 나뭇잎 처럼 그냥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창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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