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대표신문, 창원일보

[엄용현 칼럼]
기다림

[엄용현 칼럼]
기다림

창원일보 | 입력 : 2025/07/31 [15:22]
  • 카카오톡
  • 네이버
  • 인쇄

前 분성중학교 교장
기다림은 어떤 사람이나 때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필요한 단어다. 무엇이든 쉽게 단정하지 말고 쉽게 속단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며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관계이든 기다림보다 더 큰 관계를 줄 수는 없다. 보통 관계가 성급하게 끊어지는 것은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이다.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 기다림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상대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



기다림의 마음을 가져 본 사람들은 인간관계 그 이후에도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으며 기다림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넓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기다림 한번 없이 끝내버린 자신의 조급함 때문이다. 조급하지 말고 조용하게 기다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기다림은 절박감이다. 절박감이 있어야 강해진다. 질경이는 비옥한 땅보다는 척박한 땅을 골라 뿌리를 내린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잡초지만 살아남는 이유는 기다림이다. 질경이가 척박한 땅에서 기다림은 비옥한 땅이지만 다른 식물들과 경쟁해 봐야 결과가 알 수 있다는 기다림이었다. 길에 싹을 틔워도 치이면서 기다림으로 자란다. 비록 고난은 당하지만, 질경이에게도 자기만의 영역과 자유가 있다. 척박한 환경을 선택한 질경이의 생존은 다름 아닌 기다림이다. 숱한 발길질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잎은 바닥에 납작 퍼져있고 질기면서도 유연하다. 갈라지기는 하지만 좀처럼 꺾이지는 않는 잡초다. 그러면서 밟히면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다. 그 활용은 사람의 신발이나 짐승의 발, 자동차의 바퀴 등에 씨앗을 묻혀 널리 퍼트리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질경이는 자신의 한계를 기회로 바꿔 삶을 이어가는 지혜의 풀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고, 밟히는 순간조차 번식의 기회로 만드는 질경이의 지혜는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좋은 기회는 자세를 낮추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사람들은 환경이 천박하고 생이 절박할 때 좋은 기회가 있거나 경제호황기가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도 대개의 경우 땅바닥에 깔려 있거나 경제 속에서 발생한다. 나는 절박감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것은 인생을 가장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회피할 수 있지만, 결과는 회피할 수는 없다.



주막집에 드러누운 게으른 개가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그 개는 같은 자리에 드러누워서 끙끙거렸다. 주막에 올 때마다 개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어느 선비가 주모에게 "이봐요, 저 개 어디 잘못된 거 아니에요?" 주모가 대답했다. "아, 못이 박힌 나무 위에 드러누워서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당황한 선비가 다시 주모에게 묻는다. "그러면 왜 일어나 다른 곳에서 가서 쉬지 않는 거요?" 주모가 "아직 덜 아픈 거죠!" 누구든 배가 부르면 현실에 안주한다.



"Stay hungry (배고픔을 유지하라)!"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권투를 헝그리 스포츠라고 부르는 이유도 배가 고파야 주먹이 나온다는 뜻이다. 권투선수를 편안한 환경에서 배불리 먹인 다음 링에 올리면, KO로 지고 만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으면서 부터 세계챔피언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3만달러를 넘으면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뒤처지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지도를 보면 역설적으로 천연자원 등이 풍부한 나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풍부한 자원 때문에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지자, 산업화에 늦어지면서 후진국으로 전락하였다. 목마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항상 채워진 삶을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기뻐할 일도 아니다.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들일수록 생활력과 삶에 대한 의지력이 약하다. 그들은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쉬 주저앉아 버린다. 누구나 배가 부르면 현실에 안주한다. 메마른 땅에서 자란 나무가 뿌리를 깊이 박듯이, 사람도 적절한 목마름을 유지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도태되고 만다.



성 밖을 나와 갑옷을 던져 버린 채 황량한 들판에서 추위를 견디고 맹수와 맞서는 순간 숨어 있던 야생 본능과 처절한 생존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살아난다. 상처 입은 영혼은 더욱 강해진다. 실상 이것이 인생이다. 삶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을 우리에게 준다. 삶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어야 한다. 아쉬워야 영혼이 눈을 뜨고 숨을 쉰다.



부족해야 지혜가 눈을 뜨고 마음이 진실해진다. 진정한 결핍이 곧 삶의 원동력이다. 이것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춥고 배고픈데 인생에 비바람 까지 몰아친다면 쉽게 포기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겠지만 그때가 절박감과 간절함을 생각한다. 절박감과 간절함이 있으면 희망과 기회가 오고 있다는 신호다. 기다림은 열정이며 노력을 함께하는 마음이다.

  • 카카오톡
  • 네이버
  • 인쇄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