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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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 교육부 연구사 역임 / 한국상담학회 노인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수련감독 |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가 큰 사건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뇌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폭풍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틈이다.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 직장에서의 사소한 실수,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는 겉으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자극들은 마음의 둑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든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틈 사이로 불안과 피로가 조금씩 스며든다. 결국 어느 날 마음의 둑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은 아침마다 회사에 가기 전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경험하였다. 특별히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사의 짧은 한숨, 끊임없는 업무 메시지,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연락이 반복되면서 뇌는 점점 긴장 상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한가 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새벽에 자주 깨기 시작하였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늘었고, 가족의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결국 그는 병원을 찾았고 "만성 스트레스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뇌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우리의 뇌에는 위험을 감지하는 매우 민감한 경보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는 편도체라는 기관이 있다. 편도체는 뇌 속 작은 경비원과 같은 존재이다. 아주 작은 위험 신호에도 빠르게 반응한다. 원시 시대에는 맹수가 나타났을 때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었다.
예를 들어 숲속에서 사자를 만났다고 상상해보자. 그 순간 편도체는 즉시 비상벨을 울린다. 그러면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부신이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것이 바로 HPA축 반응이다. 쉽게 말하면 뇌의 재난 경보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근육은 긴장하며, 몸은 싸우거나 도망갈 준비를 한다. 이것을 투쟁-도피 반응이라고 한다. 원래는 생존을 위한 매우 중요한 기능이었다.
문제는 현대인에게는 실제 사자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뇌는 여전히 매일 사자를 만난다고 착각한다.
끝없는 경쟁, 경제적 부담, 인간관계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은 뇌를 하루 종일 긴장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 과거의 스트레스는 잠깐 도망치면 끝났지만,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추격전과 같다.
특히 스마트폰 환경은 뇌를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한 대학생은 공부를 시작하려고 책상에 앉지만 10분마다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였다. SNS 메시지, 뉴스 알림, 짧은 영상은 뇌의 주의집중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그는 "요즘 집중력이 너무 떨어졌다"고 느꼈다.
실제로 반복적인 디지털 자극은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과도하게 자극한다. 도파민은 원래 동기와 보상에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하지만 짧고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뇌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 결과 긴 글을 읽거나 천천히 집중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뇌의 여러 영역도 영향을 받는다.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만성 스트레스에 매우 약하다. 해마는 뇌 속 도서관 사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사서가 지쳐버린다. 그 결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소하며, 자꾸 깜빡하게 된다.
실제로 어떤 중학생은 시험 기간만 되면 머리가 하얘진다고 표현하였다. 평소 외웠던 내용도 시험지만 받으면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공부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해마 기능을 억제하면서 기억 인출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또한 감정을 조절하는 전전두엽도 기능이 약해진다. 전전두엽은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원래는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해야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브레이크가 느슨해진다. 그래서 작은 말에도 화가 나고, 별일 아닌데도 눈물이 나며,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소 차분하던 사람이 어느 날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크게 화를 내고, 이후 스스로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해 전전두엽의 조절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일 수 있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자꾸 새벽에 깬다. 어깨와 목이 뻣뻣하다. 이유 없이 소화가 안 된다. 같은 걱정이 머릿속을 반복해서 맴돈다. 이것은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다. 뇌가 "지금 너무 오래 긴장하고 있다"라고 보내는 구조 신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신호를 무시한다.
"괜찮다", "다들 이렇게 산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이 말들은 때때로 금이 간 둑 위에 모래주머니를 올려놓는 것과 같다. 잠시 버틸 수는 있지만, 물살은 계속 틈 사이로 스며든다.
스트레스 회복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알아차림`이다.
"왜 이렇게 예민하지?", "왜 집중이 안 되지?", "왜 자꾸 지치는 걸까?"
이 질문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첫 번째 열쇠가 된다. 스트레스를 무조건 없애려 하기보다, 지금 내 뇌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다.
다행히 우리의 뇌는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뇌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뇌는 찰흙처럼 새로운 형태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즉, 스트레스로 지친 뇌도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규칙적인 걷기 운동은 해마의 신경세포 생성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깊은 호흡과 명상은 과활성화된 편도체를 안정시키고, 전전두엽 기능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그래서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하루 10분 조용히 숨을 바라보는 시간,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스트레칭,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쉬는 시간은 과열된 뇌를 식혀주는 냉각 장치가 된다.
예를 들어 한 교사는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한 바퀴를 천천히 걷는 습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산책이었다. 하지만 몇 주 후 그는 "예전보다 화가 덜 나고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짧은 걷기와 햇빛 노출이 스트레스 회로를 안정시키고 세로토닌 시스템을 활성화한 것이다.
자동차 엔진도 과열되면 멈춰야 하듯이, 뇌도 쉼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거대한 폭풍이 아니다. 매일 방치된 작은 틈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을 만큼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틈을 빨리 알아차리는 힘이다.
어쩌면 회복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 내 마음의 둑을 천천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