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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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정책포럼 이사장 |
◆서민의 삶을 짓누르는 역대 최고 수준의 물가
최근 밥상머리 화두는 단연 `물가`이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OECD 주요 국가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체감 물가와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최고 수준을 다투고 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은 서민 경제의 숨통을 강하게 조이고 있다.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물건을 몇 개만 담아도 훌쩍 치솟는 영수증 금액을 보며, 국민들은 매일같이 팍팍해진 경제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고통받고 있다.
◆물가지수 개편, 소비 시대의 변화와 전통의 퇴장을 비추다
이처럼 서민 경제를 위협하는 물가지수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최근 정부가 예고한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에서 어떤 품목이 빠지고 새롭게 들어갔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삶의 궤적이 명확히 드러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명절 차례상과 비빔밥의 단골 재료였던 고사리와 도라지, 땅콩 같은 전통 식자재가 퇴장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도시 가정에서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해당 품목의 소비가 급감했음을 뜻한다. 이제 이러한 전통 작물은 시장에 내다 팔아도 큰돈이 되지 않는 비인기 품목이 되었고, 주로 농촌 내부에서 자급용으로 소비되거나 제사용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 식자재와 과거의 향수를 부르는 부탄가스, 재봉틀 등이 빠진 자리에는 배달 앱 이용료, 온라인 쇼핑 지출액, 그리고 젊은 층이 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AI 서비스 지출액 등이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장바구니 품목의 교체는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갈수록 외부의 상업적 서비스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으며, 생활의 모든 영역이 `돈으로 구매해야만 유지되는` 고도화된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재편되었음을 명확히 증명하는 시대상인 것이다.
◆경제 지표가 닿지 않는 곳, 농촌의 `지산지소` 시스템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관점이 있다. 소비 중심 시대의 척도인 이 물가지수가 도시와 농촌에서 서로 전혀 다른 무게와 체감도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물론 농촌 역시 거시경제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환율 상승과 유가 급등의 직격탄을 맞으며 사료, 비료, 면세유 등 농업 경영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농민들을 짓누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는 도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지수에 편입된 화려하고 값비싼 서비스들이 일상에 촘촘히 박혀있지 않아도, 농촌에는 완벽하진 않으나 그 지역에서 생산하고 이웃과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시스템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소멸 위기를 극복할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의 제안
무엇보다 농촌은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부터 생활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급 품목이 월등히 많다. 앞서 물가지수에서 퇴출당한 고사리와 도라지처럼, 비록 금전적 가치는 떨어졌을지언정 직접 기른 텃밭의 작물을 이웃과 나누고 서로의 품을 돕는 공동체의 교환 방식은 물가지수라는 차가운 잣대로 결코 측정할 수 없다. 농촌의 장바구니는 오직 돈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국가 전체의 경제 지표 충격이나 인플레이션의 파도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흔들린다.
이미 10여년 전, 인구학자인 조영태 교수는 미래를 예측하며 "딸에게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추천하겠다"고 밝혀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치열한 도시의 경쟁을 벗어나, 희소성과 가치가 높아질 농사와 농촌에서의 삶이 미래의 확실한 대안이 될 것이라는 인구학적 통찰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치솟는 물가와 소멸 위기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예견은 농촌의 자급적 라이프스타일이 왜 시대적 해법인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새롭게 개편되는 물가지수가 보여주듯, 도시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소비를 요구한다. 모든 것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고 생존을 위해 끝없이 지갑을 열어야 하는 빡빡한 굴레에 갇혀 있다. 하지만 농촌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자급자족의 기반 위에서 공동체와 지역 복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경제 지표의 변동성에 덜 휘둘리며 자연 속에서 연대하며 누리는 `농촌에서의 윤택한 삶`을 우리가 재조명하고 널리 확산시킬 수 있다면, 이는 쉼 없는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인구 분산의 동인이 될 것이다. 물가지수에 잡히지 않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간직한 농촌의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살려내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