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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한 칼럼]
마음을 다시 재배선하는 뇌

AI 시대, 관계를 회복하는 가장 강력한 뇌과학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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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시 재배선하는 뇌

AI 시대, 관계를 회복하는 가장 강력한 뇌과학 대화법

창원일보 | 입력 : 2026/07/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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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 교육부 연구사 역임 / 한국상담학회 노인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수련감독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가족을 본 적이 있다. 부모와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누구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AI가 요약해 준 뉴스를 읽고 있었고, 어머니는 업무 메신저를 확인했다. 아이들은 짧은 영상에 몰입해 있었다. 모두가 인터넷으로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풍경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메일을 대신 작성하고, 회의를 요약하며, 궁금한 것을 몇 초 만에 알려준다. 기술은 우리를 역사상 가장 빠르게 연결한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외로움과 고독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을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지적하고 있으며, 여러 연구에서는 만성적인 사회적 고립이 심혈관 질환이나 흡연만큼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한다.

 

왜 이렇게 연결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외로워질까?

 

그 답은 인간의 뇌가 진화해 온 방식에 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처럼 정보를 처리하도록만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서로의 감정을 읽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진화한 `사회적 뇌(Social Brain)`이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생존했다. 위험을 함께 피하고, 먹을 것을 나누고, 아이를 함께 키우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누군가와 연결될 때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최근 뇌과학은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따뜻한 대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실제로 뇌를 변화시키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되고,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의 과도한 흥분은 줄어든다. 이를 감정의 언어화(Affect Labeling)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불안하다.", "오늘 많이 속상했다"고 감정을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도 뇌는 혼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스트레스 조절에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진심 어린 대화는 미러뉴런(mirror neuron)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상대가 슬퍼하면 나의 뇌도 그 슬픔을 함께 느끼고, 상대가 안도하면 나의 뇌도 함께 안정을 찾는다. 이러한 신경적 공명(neural resonance)은 옥시토신(oxytocin)의 분비를 촉진해 신뢰와 유대감을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좋은 대화는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뇌의 회복 회로를 활성화하는 하나의 생물학적 치료 과정인 셈이다.

 

몇 해 전 한 IT 기업의 개발자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인공지능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코드를 작성할 때도 AI의 도움을 받았고, 회의록도 AI가 자동으로 정리했다. 업무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상하게 하루가 끝나면 사람과 이야기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의 하루를 들어보니 대부분의 소통은 메신저와 화상회의였다. 출근하면 이어폰을 끼고 일했고, 점심도 혼자 먹는 날이 많았다.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족과 대화하기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몇 달이 지나자 변화가 나타났다. 잠을 자도 피곤했고, 집중력이 떨어졌으며, 사소한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혈압도, 혈당도, 심장도 모두 정상이었다.

 

문제는 몸이 아니라 관계를 잃어버린 뇌였다.

 

상담 중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최근 누군가가 당신 이야기를 10분 이상 아무 판단 없이 들어준 적이 있습니까?"

 

그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몇 달은 된 것 같습니다"

 

이 한마디가 그의 현재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이후 회사에서는 작은 변화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20분 동안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화 시간`을 만들었다. 서로에게 "이번 주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감사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를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두 어색해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의에서 웃음이 늘었고, 서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덜 두렵습니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안전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뇌의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work)을 활성화한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느끼는 순간,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HPA축(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의 과도한 활성화가 완화되고, 전전두엽은 다시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회복한다. 반대로 지속적인 비난과 무관심은 편도체를 계속 긴장 상태에 머물게 만들어 작은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시험에서 기대했던 성적을 받지 못한 뒤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더 열심히 해야지", "다음에는 잘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말을 하지 않았다.

 

상담 후 아버지는 대화를 바꾸었다.

 

"이번 시험 때문에 많이 속상했겠구나", "아빠도 중학생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 "오늘은 성적 이야기 말고 네 기분부터 듣고 싶다"

 

며칠 뒤 아이는 먼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성적은 바로 오르지 않았지만 부모와의 대화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는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뇌는 조언을 듣기 전에 먼저 안전을 확인한다.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이 생길 때 비로소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공감은 문제 해결 이전에 뇌를 회복시키는 첫 번째 단계이다.

 

AI 시대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관계가 부족해서 지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계산과 분석, 정보 검색은 점점 더 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말하지 못한 감정을 이해하며, 함께 침묵을 견디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만이 가진 힘이다.

 

어쩌면 미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뇌를 회복시키는 대화를 할 줄 아느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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