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시(詩)에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기러기가 눈밭에 남기는 선명한 발자국`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 자취는 눈이 녹으면 한순간에 없어지고 만다. 인생의 행복과 흔적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기억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덧없는 여로`와도 같은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록을 하면서부터 `뜻있는 일`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말이다.
"中國 古史"에 `강산이개(江山易改) 본성난개(本性難改)`라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산은 바꾸기 쉽지만, 본성은 고치기 힘들다`는 뜻이다. 본성은 고쳐졌다 싶어도 자기도 모르게 행동으로 불숙불숙 나오는 것이 본성이다.
무엇이던 목적이 수단으로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의 성취감은 가치 있는 삶이다. 돈이 많고 집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행복의 조건은 좋은 느낌과 그리고 각자 생각과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행복의 조건을 바꾸려면 환경이 바뀌어야 하고, 자기경험의 초점과 관념(觀念)이 바뀌어야 한다. 행복은 쾌(快)의 조건이지만 합리주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역겨움은 덕(德)이 될 지라도 일상의 선택과 결정은 다른 것이다. 행복의 본질은 더 큰 것의 생존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동ㆍ식물을 포함한 모든 행복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동물은 움직임으로 행복을 찾고, 식물은 움직이지 않음에도 행복을 찾는다.
멍게는 유충일 때는 움직이는 동물이지만 자라고 나면 자기 뇌를 먹어 치운다고 해서 멍청이, 멍텅구리라는 말이 멍게의 명칭이다. 감정의 신호를 보내는 공작새는 꼬리에 꽃무늬 수를 보고 평가한다. 행복은 공작새의 꼬리 무늬처럼 많을수록(여가선용, 돈, 명예, 등) 좋다. 핵심은 쾌快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쾌가 많은 인생과 그렇지 않는 인생으로 차이를 두고 말한다.
행복과 관련된 두 가지는 내향적면과 외향적면으로 구분하고 있다. 항상 자극을 추구하는 활동성과 높은 사회성이 있는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행복지수가 높다. "미국노인 학회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은 건강을 위협 하는 조용한 살인자라고 했다" 2016년도 뉴욕타임스에 사회적 고립은 사람과의 관계가 적을 뿐 아니라 심장질환, 뇌졸중등에 걸릴 확률이 약 30% 높았다고 한다. 행복은 살아가면서 행복한 사람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행복의 전구를 켜고 끄는 스위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더 행복한 이유는 내향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이 사람을 더 많이 상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에게 간섭받길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은 내ㆍ외향적으로 같다. 2002년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 나오는 대사에 `모든 사람은 섬이다` 하지만 "그 섬들은 바다 밑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임을 잘 알려주는 영화다. 인간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어있다. 뇌 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인간은 뼈 속까지 사회적이다. 또한 제일 무서운 자극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2024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소득에 비해서 행복지수가 6.058점으로 조사대상 143국 가운데 52위이다" 그것은 물질주의는 높고 신뢰도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진국에 사는 시민들은 사람과의 경험에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행복감이 높다. 신뢰도는 세계행복보고서와 같이 행복을 좌우하는데 신뢰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던 노력하는 마음은 행복을 위한 것이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은 각자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잠간 위장 시키는 도구에 불과 하다. 행복은 산에서 산삼을 캐거나 복권당첨 같은 강도가 높은 일이 아니라 사소하게 주어지는 신뢰며 빈도다.
만일 돈이 없는 어부의 아들이 아파서 병원치료비 마련을 위해서 고기를 열심히 잡는 일은 행복이다. 그렇지만 바다에서 진주를 발견하자 이웃사람들이 진주에 관심을 가지고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면 아들을 죽이는 진주 밖에 안 된다. 행복한 사람은 모두 행복의 빈도가 높다. 행복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규칙적인 습관(식습관과 운동습관)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노화와 퇴화는 다르다. 왜 그런가 하면 노화는 세월의 흔적이지만 퇴화는 생활습관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행복한 Life은 생활습관의 누적과 신뢰(빈도)에 비례한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노후에 건강, 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은 친구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심신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뜻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댄스스포츠와 라인댄스, 웰빙댄스를 지도하면서 텃밭 가꾸는 일을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또 인생 2막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글쓰기에 몰입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 다른 사람에 비해서 필자는 행복의 빈도수가 높다. 인생의 행복과 흔적을 찾는 것은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며 개인적으로 잘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협치가 되어야 인생의 행복과 흔적을 남길 수 있다. 행복은 빈도를 높일수록 행복한 사람이라고 필자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저작권자 ⓒ 창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