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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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국(대구가톨릭대 창업경영학과 교수 / 논설위원 / Saxophonist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황량한 길가의 앙상한 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고도`다. 그러나 고도가 누구인지, 왜 만나야 하는지, 정말 오기는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소년은 매일 같은 말을 전한다. "오늘은 오지 않지만 내일은 꼭 오실 겁니다" 두 사람은 떠나자고 말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기다림이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오늘 우리 사회의 실버들도 저마다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자식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예전처럼 회복되기를 기다린다. 연금이 오르기를, 병원비가 줄기를, 정부가 노후를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와 삶의 보람을 되찾게 해 줄 기회가 어느 날 문밖에 도착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버의 고도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자식은 바쁘고, 몸은 세월을 거슬러 젊어지지 않는다. 복지는 늘 충분하지 않고, 사회는 노인의 경험보다 생산성과 속도를 먼저 묻는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계절은 바뀌고, 삶의 남은 시간은 소리 없이 줄어든다.
노년의 가장 큰 비극은 늙는 데 있지 않다.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어주고, 오늘을 내일로 미루는 데 있다. "몸이 좋아지면 여행해야지", "돈이 더 생기면 배우러 가야지", "자식이 시간이 나면 함께해야지"라고 말하는 사이, 하고 싶은 일은 어느새 할 수 있었던 일이 된다. 노년에게 내일은 약속된 자산이 아니다. 오늘보다 더 확실한 시간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실버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노인도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사회의 책임 회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움직이고 싶어도 교통이 불편하고, 배우고 싶어도 프로그램이 없으며, 일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 디지털 기기 앞에서 소외되고, 병원과 금융기관의 무인창구 앞에서 작아지는 노년에게 무조건 자립만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냉혹함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것만으로 효도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노년의 굶주림보다 더 깊은 고통은 관계의 굶주림이다.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으며, 부모의 말을 재촉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늙은 부모가 기다리는 고도는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때로는 자식의 전화 한 통, 따뜻한 눈맞춤 하나일 수 있다.
우리의 실버정책도 이제 보호와 수용의 관점에서 참여와 존엄의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 요양시설과 병상을 늘리는 것만으로 행복한 노후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노인이 일하고 배우며 가르칠 수 있는 공간, 문화와 체육을 누릴 수 있는 환경, 경험을 지역사회에 나눌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실버를 부양해야 할 짐으로만 바라보는 사회는 스스로의 미래를 모욕하는 사회다.
은퇴는 직책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인생에서 퇴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평생 쌓은 지혜와 실패, 기술과 인간관계는 사회가 다시 활용해야 할 귀중한 자산이다. 노년에게는 청년을 가르칠 경험이 있고, 공동체의 갈등을 중재할 연륜이 있으며, 서두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깊이가 있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개인의 손실을 넘어 국가적 낭비다.
실버 자신도 기다림의 나무 아래에서 일어나야 한다. 자식이 먼저 연락하기만 기다리지 말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친구가 부르기만 바라지 말고 차 한잔을 청해야 한다.
건강이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오늘 가능한 만큼 걸어야 한다. 평생 미뤄 온 악기를 배우고, 글을 쓰며, 여행을 떠나고, 이웃을 도울 수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하루에 한 사람의 안부를 묻고, 한 페이지를 읽으며, 한 걸음을 더 걷는 일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베케트의 두 인물은 마지막에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무대지문은 냉정하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오늘의 실버와 우리 사회 모두를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변화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기다림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고도는 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삶까지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가면 된다. 기회가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내가 문을 열고 나가면 된다. 노년은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실이 아니라, 삶을 가장 깊게 음미할 수 있는 마지막 황금기다.
실버의 고도는 먼 내일에 있지 않다. 오늘 걷는 한 걸음, 먼저 거는 전화 한 통, 다시 시작하는 작은 배움 속에 있다. 노년의 품격은 오지 않는 구원을 오래 기다리는 데 있지 않다. 기다림을 끝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다시 일어서는 데 있지 않을까? 샤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