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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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수백 개의 쥐틀과 쥐약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천막 중앙의 리어카 위엔 전시용 쥐틀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양 사장은 나를 앉혀 놓고 쥐틀을 툭툭 두드렸다.
"이중 구조라네. 쥐가 이 칸 안으로 들어가면 자동으로 갇히고, 미끼에 코를 들이밀자마자 철사로 엮은 문이 `쾅` 닫히는 구조이지. 집 나간 도둑고양이도 울고 갈 정밀함이라니까"
그는 살짝 비죽이 웃더니 말을 보탰다.
"근데 말이야, 쥐틀만 덜렁 내놓으면 사람들이 잘 안 사. 시방 손님들 눈을 잡아끄는 건 따로 있지. 바로 이 쥐약이야. 이 판은 기술 반, 말재주 반, 거기다 요만큼의 사술. 오늘 본 건 가슴에만 넣어둬. 입이 가벼우면 지갑도 가벼워지는 법이거든"
그는 곧바로 도바 앞으로 나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에이! 집안에서 쥐랑 동거 중인 분, 손들어 봅시다! 밤마다 바닥 긁어대고, 쌀독 파헤치고, 배 밑창까지 들락거리는 그 원수! 오늘 보건 당국이 서울대학교 연구실에 의뢰해 만든, 믿음이 솔솔 가는 쥐약이 도착했심더!"
양 사장은 분홍색 도넛 모양의 쥐약을 높이 흔들었다.
"이게 얼마나 기특하냐면 냄새만 맡아도 여섯 뼘 남짓 밖에서 그대로 퍼더억 죽어버립니다. 천장이고 헛간이고 배 밑창이고 싹 정리되는 기라!"
그가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근데 말이야, 아저씨 아줌마. 약만 팔면 내가 양 사장이 아니지. 실험! 영어로 익스페리먼트. 의심도 병이라고 모든 것은 검증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여러분 눈앞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천막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양 사장의 뒤편 철망 우리 안에서는 여러 마리의 쥐가 서로 몸을 부딪치며 뒤엉켜 있었다. 쉼 없이 긁어대는 소리와 축축한 냄새가 좁은 천막 안을 채웠다.
양 사장은 말없이 큰 집게를 들었다. 철망 문을 열고 쥐 한 마리를 집어 올린 뒤, 리어카 위에 마련된 낮은 철망 통로에 내려놓았다. 앞에는 쥐틀 입구가 열려 있었고 다른 쪽은 막혀 있었다. 허공에 들렸다 내려온 녀석은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날카롭게 울어댔다. 방향을 잃은 듯 몇 번 몸을 틀더니 갈 곳을 찾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혔다. 잠깐의 정적. 쥐는 몸을 잔뜩 웅크리더니 본능에 떠밀리듯 쥐틀 안으로 조금씩 파고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양 사장이 손님들 눈을 피해 리어카 아래 스위치를 발끝으로 슬쩍 눌렀다.
딸깍. 짧고 건조한 소리가 났지만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금세 묻혔다.
"찍!" 쥐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네 다리가 파르르 떨더니 금방 움직임을 멈췄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보입니꺼? 이게 바로 과학과 필요의 만남입니다. 요놈의 쥐 입장에선 날벼락 맞은 거고, 우리 입장에선 평화가 오는 거지요. 자, 농촌 어촌에서 오신 분들, 배 타시는 선원분들. 정말 쥐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 머 합니꺼. 얼른 하나씩 장만하이소!"
사람들이 지갑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양 사장에게 살짝 다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물었다.
"형님, 이거 너무 세지 않습니까? 이렇게 죽이면 하루에 쥐가 몇십 마리씩 필요할 텐데요"
양 사장이 집게로 쓰러진 쥐를 집어 들며 킥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쉿. 죽은 거 아이다. 전기 맛만 살짝 본 기다. 잠깐 까무러쳤다가 금방 깨어난다"
"전기요?"
"그래. 비밀은 저 철판 밑바닥하고 리어카 밑에 숨겨둔 배터리, 그리고 내 발끝이지. 스위치를밟으면 철판으로 전기가 살짝 흐르는 기다"
그가 발끝으로 리어카 밑을 툭 건드렸다.
"장사는 타이밍이 반이다"
나는 그제야 쥐틀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밑판은 철판이었고 가느다란 전선이 리어카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양 사장은 집게로 기절한 쥐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어이, 한 사장. 이 죽은 놈 꼴 보기 싫으니 뒤에 갖다 버리게"
나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쥐를 들고 천막 뒤로 갔다.
"진짜 버리지 말고 저 상자에 넣어놔. 조금 있으면 눈 뜰 기다"
천막 뒤편 나무상자 안에는 이미 정신을 차린 쥐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쥐를 그 옆에 내려놓았다. 주변에서는 벌써 지갑이 열리고 있었다. 양 사장은 돈을 받으며 능숙하게 쥐틀과 쥐약을 건넸다.
그러다가 손님이 잠시 뜸해지자 나를 천막 안쪽으로 불렀다.
"근데 한 사장, 하나 더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그가 쥐약 통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 쥐약, 진짜 아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가짜라고요?"
"그렇지. 우리가 진짜로 파는 건 쥐틀이야. 이 약은 손님 눈을 잡아끌고 마음 놓게 만드는 미끼 같은 거지"
그는 낄낄 웃었다.
"진짜 독약을 써서 쥐가 먹고 죽으면 실험 한 번 할 때마다 쥐 한 마리씩 죽여야 할 거 아이가. 하루 장사하고 나면 몇십 마리가 하늘나라 갈 기다. 그게 장사냐, 살생이지"
"그럼 저 쥐약은 뭡니까?"
"독약은 아이다. 사람이 먹어도 탈 없는 걸 쥐약처럼 모양만 낸 기다. 쥐는 전기로 잠깐 기절시키고, 손님 눈에는 약 냄새를 맡고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쥐 한 마리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새 놈들은 덫만 봐도 피해 다니거든. 그러니 잡은 놈들은 잘 모셨다가 몇 번씩 출연시켜야 장사가 남는 기다"
나는 피식 웃었다.
양 사장도 나를 따라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결국 내가 생각해낸 게 이 방법이야. 쇼는 쇼대로 하고, 쥐는 기절만 하고, 손님은 `이야, 과학의 힘이다` 하면서 지갑을 여는 거지"
그가 돈을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장사라는 게 별거 있나. 물건만 파는 게 아이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기다"
천막 위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선창 쪽에서는 생선을 떼는 상인들의 고함이 들려왔고, 비릿한 냄새가 젖은 바람을 타고 천막 안까지 밀려들었다.
먹고사는 길도 가지가지였다. 은행 창구 안에 앉아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였다. 국제시장 도바에서 옷을 팔면서 장사라는 것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정도는 배웠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발끝의 움직임 하나까지 돈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쥐약이 가짜라는 것도, 쥐가 약 때문에 죽은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물건을 내가 직접 들고 사람들 앞에 서도 되는 것일까. 양 사장이 그런 내 속을 읽은 듯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우"
"예"
"이제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한번 해봐야지"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제가요?"
"악어 아우한테 들으니 자네 장사 초짜 시절 국제시장에서 엄청나게 팔았다카던데. 그 배짱 여기서 한번 꺼내보게"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거하고 이거하고는 다르지요"
"뭐가 달라? 장사는 다 똑같다. 옷을 팔든 쥐틀을 팔든 손님 발을 멈춰 세우고 지갑을 열게 하면 되는 기다"
그는 나를 리어카 앞으로 떠밀었다.
"장사꾼이 품목 가릴 처지가 아니다. 입으로 밥 벌어먹는 재주가 있어야지. 힘들면 옆에서 내가 코치해 줄 테니 오늘 제대로 한 판해봐"
나는 손사래를 쳤다.
"형님, 그래도 이거 사람 속이는 거 아닙니까?"
양 사장은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 돌렸다.
"세상 장사가 다 있는 그대로만 말하고 파는 줄 아나? 그렇다고 없는 물건을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쥐틀은 진짜로 쥐를 잡는다 아이가. 손님은 쥐 잡으려고 돈 내고, 우리는 쥐틀 팔아서 먹고살고. 그 사이에 장사꾼 설레발 말이 좀 덧붙는 거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달리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사판이라는 곳은 사람에게 오래 망설일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어느새 내 손은 양 사장이 건네 준 쥐약 한 통을 단단이 거머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