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칼럼]
|
![]() ▲ 합천정책포럼 이사장 |
◆주거난 논란과 2차 베이비부머의 위기
최근 청년 주거난의 해법이라며 제시된 `폐버스 청년주택` 구상은 우리 사회가 청년 세대의 현실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폐기된 버스`를 리모델링해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발상은 주거 문제를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채우는 시혜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안일한 감수성의 극치였다. 이 황당한 제안은 청년들의 절박한 생존 고민을 정면으로 모욕하는 행위로 비쳤으며, 기성세대의 정책 결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적개심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세대 간 괴리의 밑바닥에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거대한 구조적 지각변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는 현재 정년퇴직 시기에 진입하며 노동시장에서 대거 대치되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들은 고도성장기의 안정된 직장을 경험한 전기 세대와, 이후 IMF 외환위기를 몸소 겪으며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생존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던 후기 세대의 궤적이 엇갈리는 집단이다. 보고서가 경고하듯, 이들이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난 뒤 저임금ㆍ저숙련 노동으로 전락하는 이른바 `하향 이직`의 파도에 직면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가적 과제다.
◆세대 갈등의 함정과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전환
문제는 은퇴한 2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구제하겠다는 기존의 전통적인 일자리 지원책들이 오히려 2030 청년 세대와의 좁아진 고용 시장 속에서 소모적인 경쟁 구도를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두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대립하게 만드는 낡은 방식들은 세대 간 갈등을 키우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AI가 전문직의 영역까지 빠르게 잠식하는 문명사적 대전환 속에서, 기성세대 중심의 일자리 늘리기 논의는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다.
따라서 이제는 관점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억지로 기득권 노동시장에 붙잡아두는 대신, 이들을 자연스럽게 은퇴시키면서 그에 걸맞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AI 시대의 도래는 인간이 생계를 위해 무한히 지구 자원을 파괴하며 고된 노동을 지속하지 않아도 되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이에 따라 은퇴 후 전통적인 자본주의식 임금 노동 시장에 머무는 삶의 방식을 넘어, 현금 거래 중심의 무한 경쟁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미 쌓인 자원과 물품을 이웃과 나누고 상생형 사회공헌 활동, 환경보호, 교육, 물물교환 등을 실천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인구소멸지역인 작은 단위 지자체에서부터 구현해 나가야 할 때다.
◆지역 소멸과 은퇴 세대를 잇는 새로운 삶의 전환과 연착륙
이러한 철학적 전환을 바탕으로 약 1천만 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인구소멸지역으로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이 거대한 세대가 농촌 공동체로 한꺼번에 전부 이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1964년생의 퇴직을 시작으로 매년 순차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은퇴가 이루어지므로, 이 시차를 활용해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전환 모델을 그릴 수 있다.
이들을 기득권 노동시장에서 부드럽게 이탈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임금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차원의 삶의 형태가 제시되어야 한다. 은퇴 세대가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할 때 뒷받침되어야 할 핵심은 단순한 생계형 일자리가 아니라, 공적 지원인 기본소득형 사회공헌비와 결합된 지역 정착형 사회공헌 오퍼레이터(Operator) 체계다. 이들은 전통적 노동시장의 핵심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2030 청년 세대가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돌봄ㆍ의료ㆍ교육 등 필수적인 사회적 서비스를 지탱하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이러한 새로운 삶의 형태로 이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은퇴 직전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재교육하는 차원을 넘어, 무한 경쟁과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적 삶에서 벗어나 순환과 공유의 가치를 체득하는 `미래사회를 위한 사회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세대 융합과 상생을 통한 새로운 미래의 설계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은 소모적 갈등이 아니라, 자본의 욕망을 내려놓고 작은 지방 도시에서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상생의 재설계`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들을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연착륙시키는 것은 AI 시대 새로운 인간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동시에, 오늘날 2030 세대가 직면한 취업, 결혼, 출산 등 구조적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 단초가 된다.
경제적 타당성 측면에서도 이 모델은 매우 합리적이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기본소득을 지원하며 지역사회 연계형 삶을 살게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1천만명에 달하는 이들의 주된 일자리를 이어받은 청년들이 안정된 경제활동을 통해 창출하는 세수와 비교할 때 훨씬 적다. 즉, 자본주의적 재정 계산으로 보나 지구환경과 미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보아도 이 모델이 지닌 합리성과 효용성은 비교할 수 없이 높다.
결국 1천만에 가까운 노동시장 주류 세대를 순차적이고 부드럽게 연착륙시키고, 이들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표준 모델을 지역에서부터 제시할 때 청년들에게도,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비로소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소멸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고, 세대 융합과 공동체성의 회복을 이뤄내는 이 위대한 전환의 도전에, 이제 우리 사회의 정책 결정자와 기성세대 스스로가 진지한 결단으로 응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