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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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정책포럼 이사장 |
요즘 합천군에서 추진 중인 인구소멸 대응 전략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산지 이음 프로젝트, 청년 임대주택, 출산 장려금, 그리고 거대한 두무산 양수발전소 건립까지 정책의 면면은 참으로 화려하다. 하지만 그 속을 찬찬히 뜯어보면 정작 제일 중요한 `사람`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과거 다른 지역에서 이미 실패했던 대규모 토목 공사나, 이웃 지자체와 제 살 깎아먹기로 벌이는 출산장려금 경쟁으로는 떠나는 사람을 결코 붙잡을 수 없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번듯한 하드웨어만 지어놓는 것은 상권 분석이나 고객 취향에 대한 고민 하나 없이 "가게 문만 열어두면 손님이 알아서 오겠지" 하고 마냥 기다리는 전형적인 탁상행정과 다르지 않다.
◆인구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셔오는` 것이다
우리가 인구 문제를 풀 때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무언가 대단한 시설을 지어놓으면 지역 안에서 인구가 뚝딱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구 반등은 마술처럼 사람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다. 대도시의 숨 막히는 집중 현상 속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우리 지역으로 `분산`시켜 잘 정착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무작정 삽부터 뜨고 건물을 올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도시를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합천으로 오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묻고 분석해야 한다. 막연히 "인구를 늘리자"고 외칠 것이 아니라, 지역에 곧바로 활력을 불어넣어 줄 사람들을 먼저 모셔오고 차근차근 정착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전략적인 유입 순서`를 짜는 것이 핵심이다.
◆누구에게 먼저 손 내밀 것인가: AI 시대 이탈 계층과 고숙련 은퇴자
그렇다면 우리 합천은 누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까. 바로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일자리를 위협받는 청장년층, 그리고 대도시에서 치열하게 일하다 은퇴한 고학력ㆍ고숙련 은퇴자들이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핵심 인재로 일하던 전문가들이 은퇴 후에 그 귀한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아파트 경비직이나 청소 같은 단순 노무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합천군 역시 `귀산촌 아카데미`를 통한 임업인 육성이나 밀키트를 생산하는 `로컬푸드 플랫폼` 등을 새로운 일자리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고도의 전문성과 기획력을 쌓아온 은퇴자들의 역량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은퇴하고 시골에 내려와 낯선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거나 단순 생산직에 종사하라고 하면 선뜻 나설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이 평생 쌓아온 지적 자본을 우리 지역 문제를 푸는 데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이른바 `경력 연장형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깔아주어야 한다. 아울러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 위기를 겪는 청장년층에게도 합천이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게 유입의 문턱을 한껏 낮춰야 한다.
◆`로컬 루프(Local Loop)`와 공간의 역발상으로 판을 바꾸자
이들이 합천에 와서 기꺼이 뿌리내리게 하려면 `로컬 루프(Local Loop)`라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쉽게 말해, 합천 외 지역으로 빠져나가던 행정 예산을 돌려 우리 지역 청장년들의 일거리를 만드는 데 쓰는 방식이다. 돈과 일자리가 지역 안에서 빙글빙글 선순환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가오는 AI 시대에 발맞춰 우리 지역 청년들을 첨단 기술로 농촌 일손 부족이나 어르신 돌봄 문제를 직접 푸는 `AI 오퍼레이터(운영자)`로 키워내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 대도시에서 온 은퇴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풍부한 경영 노하우를 보태준다면, 청년의 기술과 어르신의 연륜이 만나 세대를 뛰어넘는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이다.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천편일률적인 임대주택 몇십 채 짓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다. 동네 곳곳에 방치된 빈집들을 멋지게 고쳐 머물며 관광도 하고 생활도 하는 `마을 호텔`로 바꾸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어르신 돌봄과 청장년 일자리가 하나로 묶이는 `웰니스(Wellness)` 커뮤니티를 만든다면, 요양과 일자리가 동시에 해결되는 합천만의 매력적인 생태계가 탄생할 수 있다.
화려한 건물만 짓고 생색내는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거대한 사회 변화의 흐름을 날카롭게 읽어내고, 우리 합천에 올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경력이 무엇인지 그들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인구 정책의 밑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