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논설위원 |
몇 년 전 차창을 스치는 꽃향기를 따라 전남 강진의 대표적 사상가인 다산(茶山)유배지(流配地)에 다녀왔다.
다산유물전시관에는 `다산과 추사의 만남 전(展)`이 열리고 있었다. 추사는 다산을 학문적으로 사모해 `여유당(與猶堂)집`의 교열을 맡고 정약용(丁若鏞)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山房)`이라는 뜻의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보(寶)자와 방(房)자의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정(丁)자의 아랫부분을 회전하면서 변화를 주고 산(山)자를 위쪽으로 바짝 붙여 여백의 미를 강하게 나타 낸 다"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느긋하게 쉬는 느낌으로 표현돼 있었다. 백련사를 품은 강진의 만덕산은 예로부터 차(茶)가 많아 다산이라 했던 것이다. 다산은 강진에서 꼬박 18년을 유배생활을 했다. 차를 좋아해 호(號)를 다산이라 했으며, "초가(草家)집에 살면서 백련사 동백(冬柏)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다산초당옆 동백은 벌써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적 제 107호인 `다산초당(茶山草堂)`은 다산이 1801년(순조1)신사유옥에 연루돼 강진으로 귀양살이를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해남 윤 씨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겼다.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을 다산초당에서 보냈다. 후진 양성과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사상의 산실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포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아쉽게도 초당은 초가집도 아니고, 세월의 때가 묻은 흙 담장이 아니었다. 팔각(八角)기와 지붕과 각진 기둥을 한 괜찮은 집이었다. 귀양살이 한 집 치고는 너무 호화스러웠다. 그러니 필자의 눈에는 마치 다산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것처럼, 영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객들이 볼 때 그 옛날 유배객이 이렇게 좋은 집에서 유배가 아닌 호강하면서 살았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했다. 아니라 다를까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초가를 허물고, 새로 지었다고 한다. 괴물처럼 비치는 기와집을 철거할 수는 없을까? 세찬 비바람이 불면 금방 넘어질 듯한 허름한 초가로 복원하면 다산의 혼ㆍ사상ㆍ숨결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다산은 여기다 연못을 만들고 돌을 쌓아 `연지석가산(蓮池石暇山)`이라 불렀다. 샘물을 파서 약천이라 부르며 여기서 물을 길어 마당에 있던 부뚜막인 다조(茶調)에서 차를 끓였다. 다산에게는 차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돌아가신 정조와 멀리 흑산도에서 유배중인 형님 정약전(丁若銓)이 그리울 때 강진만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래던 언덕에 `천일각(天一閣)` 있다. 하지만 천일각은 유배시절에는 없었던 건물로 전해져 아쉬움이 남는다. 천일각을 지나면 `해월루`가 나온다. 이 길은 마치 공중에 든 해월루에서 땅 위로 사다리가 내려진 모습으로 보인다. 어떤 이는 "구름다리를 걷는 기분"이라고 한다. 해월루에서 내려다보는 강진만은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듯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산 정약용을 `선생`이라 부른다. 자신의 온갖 어려움에도 백성을 위해서, 목민관을 위해서, 제왕을 위해서 훈육지침서를 남길 정도로 큰 인물이다. 관직 생활과 유배생활 중에도, 쉬지 않고 가장 광범한 영역에 가장 방대한 저술을 남긴 분이다. 오래 앉아서 저술하느라 "복사뼈가 세 번이나 내려앉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선생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러함 때문일 것이다.
다산은 4남 1녀 중 막내였다. 그런데 `신유박해`로 인해 셋째 형님 정약종(丁若鍾1760-1801), 자형 이승훈(李承薰1758-1816)이 참수형을 당했고, 둘째 정약전(1758-1816)은 다산과 함께 유배형에 처해졌는데, 정약전은 유배 중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천주교가 빌미가 돼 온 집안에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신유박해는 정치적 각도에서 본다면 정조의 승하로 권력층이 교체되고 그로 인해 남인 핵심세력이 권력투쟁에서 철저히 패배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남인 중심인물이었고 탁월한 재능으로 인해 정조의 각별한 총애를 입었기에 집중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탄압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다산은 15세에 풍산 홍 씨와 결혼했다. 부인과의 사이에 모두 6남 3녀를 낳았는데 살아남은 아이가 2남 1녀이고 죽은 아이가 4남 2 녀였다. 여섯 아이 중 다섯이 마마로 죽었다. 그래서 `종두법(種痘法)`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중국의 문헌을 적극 구해보고 실제 사용 사례가 있었다. 아이들을 마마로 잃은 개인적인 책임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산초당은 우리들의 삶에 큰 의미를 남겼다. 세파에 흔들릴 때마다 다산이 남긴 `사의재(四宜(齋)`의 의미처럼 `생각을 맑게 하고, 용모를 엄숙히 하며 언어는 과묵하게 하고, 동작을 신중히 해야 한다. 인생의 황금기를 유배생활로 보냈으면서도 비탄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후학을 위해 큰 가르침을 남긴, 대인(大人)으로서의 `정약용`의 사상적 세계를 헤아려 보는 우리가 돼야겠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194578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