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즐겨찾기  l  시작페이지    l  2019.3.24 (일)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http://www.changwonilbo.com/news/202444
발행일: 2019/01/09  차환식 기자
김해 봉황동 유적서, 가야 집모양토기 출토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4∼5세기 집모양토기(왼쪽)와 5세기 말발걸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김해 봉황동 유적지(사적 제2호)에서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4∼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집모양토기(家形土器)가 출토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야계 집모양토기는 대부분 고상식(高床式ㆍ마루를 높게 쌓은 형태)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토기는 지면에 밀착해 건축물을 세운 지면식(地面式)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연차 발굴 중인 김해 봉황동 유적 내 4세기 말∼5세기 초 건물터 주변에서 지난해 가을 무렵 길이와 높이가 6∼7㎝인 집모양토기를 수습했다고 9일 밝혔다.
 

이 토기는 정면은 평평하지만, 뒤쪽 벽체는 반원형이다. 앞쪽은 가운데 부분에 사각형 구멍을 냈고, 아래에 받침대가 있다. 옆쪽에는 안에서 바깥으로 원형 창을 뚫었다. 지붕도 앞뒤가 달라 앞쪽은 책을 뒤집어 놓은 듯한 삿갓 모양 맞배지붕이지만, 뒤쪽은 둥그스름하다.
 

지난 2014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창원 진해구 석동 유적에서 찾은 4∼5세기 집모양토기는 기둥 9개 위에 누각 같은 건물을 올렸고, 지붕은 완전한 맞배지붕이다. 가야계 집모양토기는 창원 석동 유적 외에는 창원 다호리 고분과 함안 소포리 유적에서 나온 바 있다.
 

지난해 봉황동 유적 조사에서는 고리 상단부에 구멍을 내고 철심을 박은 철제 말발걸이(등자)도 발견됐다.
 

말발걸이는 불을 사용한 흔적이 남은 자취인 소성유구(燒成遺構) 주변 5세기 초반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에서 나왔다. 

 

/차환식 기자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기획·특집
 2018 경남사제 Song Song Festival
4.3 투표
동창원농협
창원생탁주
 경제·IT
 꼭 알아야 될 법률 지식
 여론조사 샘플
 
  l   회사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웹하드   l   메일   l  
Copyright (c) 창원일보(주) All rights reserved. 경남 창원시 의창구 남산로 1번길 8, 동양빌딩 4층(편집국)-5층(경영국)
대표전화 055-212-0001 Fax: 055-266-0002 E-mail: 2120001@changwonilbo.com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제/복사/배포를 금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