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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면서도 전통시대의 여성은 남성의 권위에 억압받는 존재였다. 조선 역시 그게 다를 게 없었다. 특히 조선 시대의 경우 여성은 남정 중심적인 유교적 관념으로 늘 무시당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성리학 사회인 조선의 개항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 하층민들에게도 관심을 보였던 연암 박지원(朴趾源ㆍ1737~1805년) 조차 "아내 잃으면 다시 장가를 들 수 있지만 친구를 잃으면 그럴 수 없다"며 아내를 친구 아래에 두었으니 다른 사람이야 오죽했을까?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표현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라면 특히 상황은 다르다. 가능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선비의 도(道)라고 여기는 성리학 사회 분위기 탓이다. 하지만 이념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다정다감했던 선비들도 있었다.
꼿꼿한 선비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ㆍ1786~1856년)도 아내를 많이 챙겼던 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추사가 55세였던 가을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되었을 때, 첫째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한 아내 예안 이 씨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재미있는 것은 부인이 읽을 수 있도록 언문 편지를 보냈던 점이다.
1841년 4월에 보낸 편지에서 추사는 도착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부인이 보내준 음식과 반찬 가운데 인절미와 무 짱아지도 모두 썩어 먹을 수 없게 됐다면서 앞으로는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고통스런 유배 생활에 부인의 편지가 위로가 되었던지 답장을 해주지 않는데 대한 섭섭함을 내비친 글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울적한 유배 생활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편지를 보냈을 수도 있겠으나 성리학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아내를 지극히 아꼈던 것이다.
하지만 추사를 정성껏 뒷바라지하던 아내는 병약해 추사가 유배지에 있던 1842년 11월 예산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추사는 예전에 부인에게 "부인이 만약 죽게 되면 내가 먼저 죽는 것이 낫겠다. 그래야 더 좋을 것 같구려" 하고 농담 삼아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추사는 제문에서 `나보다 먼저 죽은 것이 무에 그리 좋은 일이겠는가? 내 두 눈으로 홀아비가 돼 홀로 사는 것을 보게 할 뿐이다. 푸른 바다 넓은 하늘에 한스러움만 끝없이 사무치구나`라고 하며 부인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했다.
심노숭(沈魯崇ㆍ1762~1837년)은 조금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수십 편의 글을 남겼다. 이러한 예는 다른 이들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성리학적 사유에 구속되지 않고 마음속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던,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이었던 것이다.
`슬퍼하되 상하지 말라` 공자의 가르침을 떠받들던 조선 후기에도 부모도 아닌 아내의 죽음에 과도한 슬픔을 보였던 심노승의 아내 사랑은 특이하다. 성리학에서는 되도록 감정 표출은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때문에 심노앙도 심노숭에게 "형의 슬픔은 너무 과도"한 것이라며 글쓰기를 줄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노숭은 감정이 짙게 깔린 글을 지었다. 그 글을 모은 `침상집` 서문 말미(末尾)에 이렇게 소감을 밝힌다.
"그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정은 아녀자 같고,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자취는 나그네 같아, 슬픔이 지나쳐 상함에 이르기도 하고, 후회가 극에 달에 원망이 일기도 하니 이러한 것들이 다 이 안에 담겼다. 이는 홀아비의 정이니, 홀아비일지라도 홀아비의 정을 아는 자가 아니면 함께 이 안의 글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침상 집에서) 늘 이성에 억눌려 있던 감정의 자유로운 발산이었던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정을 아는 자만이 함께할 수 있는 글을 당당히 내놓았던 심노숭에게는 그런 점에서 성리학적 지식인과는 다른 무엇이 발견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 운명이 시문 때문에 긍해졌거늘 어째서 시문(詩文) 짓기를 그치지 않아 그 궁함을 더하고 있는가?"라고 하자, 심노승은 "운명 그 자체가 궁한 것이지, 그게 어찌 시문의 죄이겠는가? 오히려 시문으로 궁함은 잊고 있으니 그 공이 크지 않은가?"라고 했다.
어느 시대든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便乘) 하지 않고 시대데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당시에는 시문 때문에 삶 자체가 궁할 수도 있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직설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있지만 온화하고 속 깊은 옛 선비의 사랑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부부의 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과거의 역사 속 남편이든 현대의 남편이든 가장 훌륭하고 멋있는 남편은 외모가 준수하고 잘 생긴 사람일까? 아님 마음이 푸근하고 자상한 사람일까? 아님 경제적으로 뛰어난 사람일까? 필자가 보기에 진짜 멋있는 남편은 자신보다 뛰어난 아내를 만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207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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