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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5/19  창원일보
[우외호 칼럼]
왕비의 삶

논설위원
조선 제18대왕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재상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어딜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종의 어머니인 세조비 정희왕후의 침소이다. 재상들은 다음 왕위를 이을 상주를 정해달라고 왕대비에게 청했다는 사실이 잿밥에만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정희 왕후는 예종의 원자가 아직 어리고 예종의 형으로 이미 사망한 의경세자의 큰 아들인 월산대군은 병이 있어 대통을 잇기엔 부족하다며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을 지목한다.
 

그가 바로 성종, 당시 나이 13세였다. 정희왕후는 어린 성종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8년 동안 청정했다.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이다.
 

정희왕후는 원래 왕비 출신이 아니었다. 11세에 수양대군에게 시집왔다가 남편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면서 37세에 극적으로 왕비가 됐던 것이다. 8년간의 청정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그녀의 집권기에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성종을 선택해 훌륭하게 교육시킨 것도 정희왕후의 공이라고 칭송한다.
 

왕의 정실부인이자 조선의 국모로서 현왕의 뒤를 이을 후계자 생산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했던 사람, 조선 왕비의 `구중궁궐(九重宮闕)`속 삶을 한국중앙연구원 학자 7명이 `왕비의 간택과 책봉`, `아이를 낳고 기르다` 왕실 여인의 권력 참여, 수렴청정` `왕비와 왕실의 외척` 등으로 나눠 들여다봤다.
 

공개구혼으로 간택, 조선 왕실의 혼례는 `공개구혼`을 통해 이뤄졌다. 전국에 광고를 내 왕비 신청을 받았다. 왕비 간택령이 내려지면 전국의 15~20세 양반가 처녀들은 단자라 불리는 `사주팔자 적은 종이`를 제출해야 했다. 국왕의 부인으로 떠받들어지는 자리이지만 대다수 반자의 부모들은 딸을 숨기려다 발각된 전, 현직 관료들을 잡아다가 추문했다.
 

보통 왕대비와 대왕대비가 간택을 맞지만, 왕이 직접 간택한 경우도 있다. 영조는 66세에 어린 신부를 계비로 맞으면서 왕비 후보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어이냐?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어냐?"고 했다.  이에 영민한 처녀 한 명이 `목화 꽃`이라 답했다. 이어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을 따뜻하게 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 감복(感服)한 영조는 그녀를 왕비로 간택했다. 바로 정순황후다.
 

왕비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는 왕통을 이을 후계자 생산이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왕비의 역할은 확 줄었다. 왕비의 역할은 출산까지이고, 수유와 육아는 유모가 맡았다. 왕실 아이들은 길게는 10세 적어도 5~6세 까지는 젖을 먹였다 정조 10년(1786년) 문효 세자가 다섯 나이에 홍역을 앓다가 죽자 신하들이 "젖을 너무 일찍 끓어 기초 체력이 허약한 탓"이라 했다.
 

왕비는 간택을 받기 전까지는 평범한 양반가의 딸로 살다가 궁궐에 들어오기 때문에 간택 이전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간택 이후에도 왕비의 궁중 여성이 직접 작은 성종. 명종. 선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대에 6명의 대비에 의해 총 7차례 시행됐다. 순조비인 순원왕후 김 씨는 현종 대에 7년, 철종 대에 3년간, 두 번의 수령청정을 했다. 수렴청정의 대비는 `여주` 즉 여자 군주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이 끝나고 나서도 남동생 윤원형과 함께 정사에 계속 관여했던 것으로 악명 높다.
 

정치적 풍랑에 휩쓸려 비극적 삶을 살다간 왕비들도 있다. 중종이 비 단경 황후는 중종반정이 성공하면서 왕비의 자리에 올랐지만 불과 며칠 만에 반정 세력에 의해 폐위됐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 씨는 왕비로 책정된 지 3년 만에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와의 불화로 사약을 받았다.
 

그밖에 후궁과의 관계 등 궁중 여성들과 왕비의 관계, 왕과 왕비의 첫날밤 등 왕실의 내밀한 속살 이야기가 흥미롭다. 자료의 한계 탓이겠지만 `왕비의 하루 엿보기 식의 궁궐 일상은 복원하지 못해 책장을 덮어도 궁금증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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