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수십억원의 특수활동비가 모두 불법 자금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파기환송심이 남아있긴 하지만 통상 대법원 판단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판결이 나오는 점에 비춰보면 국정원 특활비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은 대통령에게 수시로 거액을 갖다 바친 특활비 사건으로 전직 원장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대법원은 28일 박 전 대통령과 전직 국정원장들의 특활비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이 무죄로 판단한 국고손실 일부 혐의와 뇌물 혐의 모두 유죄로 봐야 하기에 다시 심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심은 박 전 대통령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ㆍ안봉근ㆍ정호성 비서관 등을 통해 남재준ㆍ이병기ㆍ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서 받은 총 36억 5,000여만원의 특활비 가운데 27억원만 국고손실 피해액으로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엄격한 법 해석을 통해 국정원장이 법률상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므로 34억 5,000만원에 대해 국고손실 혐의가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장들은 특활비 사용처와 지급 시기, 금액 등을 확정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지출까지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병호 전 원장 시절 전달된 나머지 2억원에 관해서도 2심 판단을 뒤집고 직무 관련성을 인정해 뇌물이 맞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수활동비는 정부 예산 비용 항목 가운데 하나로, 지나치게 큰 규모와 유용 등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검은 예산`, `눈먼 돈`이라는 꼬리표가 늘상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집행지침에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만 규정돼 있을 뿐 사용처 증빙자료가 필요가 없다. 이런 `묻지마 특활비`가 문제가 된 사례는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예산증액을 도와준 대가로 국정원에서 1억원의 뇌물을 받아 의원직을 잃은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은 돈도 특활비였다. `화이트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조윤선ㆍ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검찰 `돈봉투 만찬`에도 특활비가 등장한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는 노동계 분열을 노리고 제3의 노총을 만드는 데도 국정원 특활비가 쓰이기도 했다. 밀행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연간 1조원이 넘는 세금을 특활비로 조성해 쌈짓돈처럼 쓰는 일이 용납되는 시대는 지났다. 국회가 지난해 불가피한 영역을 제외하고 특활비를 폐지한 것은 좋은 본보기다. 비록 늦긴 했지만, 정치권이 문제 의식을 갖고 특활비를 줄이려는 노력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2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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