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논설위원 |
이낙연 전 대표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다. 지난 8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호남권 공약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민주당의 가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정권 재창출에 나서기로 했다며 "지금 바로 서울에 연락해 의원직 사퇴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5일 열린 충청권 순회투표에서 충청권에 이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더블스코어 표차로 이겼다. 이 같은 뒤 충격적인 결과에 낙심해 일부 일정을 취소하고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가 장고 끝에 내놓은 수가 국회의원직 사퇴라는 카드로 드러났다. 이는 충청권의 참패에 따른 캠프 내부의 동요를 차단하고, 오는 12일 1차 슈퍼위크와 추석 연휴 이후 그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호남지역 순회경선(25~26일)에 대비한 포석이다.
장고 끝에 배수진을 쳤지만 일부에서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추미애 후보가 그렇다. 추미애 캠프는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혼이 배인, 정치 1번지 종로가 민주당원과 지지자에게 어떤 상징성을 갖는 지를 망각한 경솔한 결정"이라며 "국민의 소중한 선택을 자신의 정치적 유 불리에 따라 버리는 것은스스로 정치인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사퇴 의사를 철회하고 경선에 집중하라"고 날을 세웠다. 추미애 측은 이낙연의 이번 선언이 '책임을 지지 않는 후보'의 이미지를 가져와 추 전 장관과의 2등 싸움을 더욱 지피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낙연의 발언은 그를 선택한 종로 구민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며, 또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대선후보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아주 독선이며, 오만불손한 처사로서 비난 받음이 마땅하다. 이낙연 전 대표의 갑작스런 의원직 사퇴 결정은 몇 가지 점에서 현명하지 못하다. 오히려 책임 정치를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직은 지역구 유권자들의 동의 없이 정략적으로 거취를 결정할 수 없다. 더욱이 종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곳인 동시에 정치 1번지로서, 정권 창출의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헌신짝 버리듯 정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당수 민주당 당원들의 생각이다. 국무총리시절 차기 대권후보군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했던 민주 진영의 한 후보가 이 같은 행태로 국민의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지난 2019년 9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늘날 21세기 국회의원이 안할 3대 쇼가 있다. 첫째는 삭발하지 마라, 둘째는 단식하지 마라, 셋째는 의원직 사퇴하지 마라'다. 삭발해도 머리는 길고, 단식해도 굶어죽지 않고, 의원직 사퇴한 사람 없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014년에도 전남도지사 선거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전력이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처럼 실제 사퇴서가 처리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경우처럼, 사퇴 선언만 있고 실현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현행 국회법 규정상 국회의원의 사퇴는 회기 중 국회의 표결이나 비회기 중 국회의장의 사퇴 수리 결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퇴 시점도 문제다. 사퇴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대선 출마 초기에 했어야 한다.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충청권 참패 후 사퇴 결정을 하는 것은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퇴 선언의 장소도 문제다. 부득이 사퇴 발표를 하더라도 본인의 지역구인 종로에서 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데 종로와 무관한 광주에서 갑작스럽게 사퇴 발표를 하는 것은, 자신을 선택한 지역구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호남 표심을 의식한 정략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사퇴를 작심한 배경에는 이재명 지사도 사퇴하라는 압박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퇴가 실현되면 보궐선거의 부담을 당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시장 자리도 국민의힘에 내준 판에, 정치적 상징성이 큰 종로 보궐선거를 다시 치르게 하는 것은 당에 부담을 안기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만약 패하게 되면 앞으로의 선거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크며, 민주진영의 영원한 배신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낙연은 사퇴 선언 하루 만에 의원실을 퇴거했지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결연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자는 것인데, 여론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모습이 외로운 달빛아래 일렁이는 풍경소리와 다를 바 없다. 오는 12일 1차 전국 투표가 주목된다. 거기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 하면 끝이다. 정권재창출은 민주당 후보들이 모두 추구하는 바다. 왜 이낙연이어야 하느냐를 더 부각시켜야 한다. 아울러 이재명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네거티브가 패착 중 패착이요 하책 중 하책이 되었다.
이낙연은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가 아니라 정치적 고향인 광주에서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는 2주 후 열리는 호남지역 경선에서 효과를 최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낙연이 자신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호남에서마저 밀리면 더는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하기야 지난 대표시절 검찰과 언론개혁에 늘 애매모한 태도를 취했고, 또한 지난 연초 이명박 박근혜 두 전 대통령 사면을 대통령에 건의하겠다는 발언으로, 텃밭에서 조차 외면당하고 민심도 잃고 당심마저 잃었다.
의원직 사퇴보단 정권재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그럴수록 경선은 당당해야 한다. 판세가 좀 불리하다고 네거티브를 선택을 하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미 3번의 민주정부를 창출한 민주당원과 지지자들은 정치의식 수준이 높은 편이다. 더욱이 호남 유권자들은 출신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밀어주지 않는다. 과거 16대 대통령 경선에서 정동영 예비 후보를 선택하기보단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본선 후보로 선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호남은 네거티브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오직 본선 경쟁력과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한다.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마당에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낙연은 국민과 당원들의 눈높이에 맞는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심판받기 바라며, 의원직 사퇴란 카드가 ‘신의 한 수’가 될지 지켜 볼 일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257573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