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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창원일보 회장 |
어느 노인이 시골길을 걷다 잠시 나무 밑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그때 건너편 밭에서 한 농부가 누런 소와 검은 소를 데리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땡볕에서 일하는 농부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잠시 쉬었다 하라고 말을 건넸다.
농부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그 노인은 별 뜻 없이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잠시 소가 있는 쪽을 한번 쳐다보더니 그 노인의 옷소매를 끌고 밭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노인은 뜬금없는 농부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농부를 뒤따라갔다.
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르자 그 농부는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런 소는 일을 곧 잘하고 시키는 대로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데 검은 소는 꾀를 부려 다스리기가 힘이 든다」 는 것이었다.
무슨 긴요한 얘기라도 하려는 줄 알고 따라온 그 노인은 어이가 없는 듯 다시 물었다.
「아니 노인장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여기까지 와서 말씀을 하시오」
그러자 그 농부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저를 좋아하고 미워하는 줄 압니다.
내가 만일 아까 그놈들 근처에서 이 얘기를 했다면 그놈들이 다 들었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 사람의 말을 짐승이 알아들으랴 싶지만 나는 내 집 일을 애써 해주는 그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농부의 이 같은 사려 깊은 행동에 감동을 받은 그 노인은 일생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했다고 한다.
그냥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을 농부와의 이야기를 인생의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의 노인은 다름 아닌 조선시대의 명재상으로 불리고 있는 황희(1363-1453)이다.
황희는 조선 개국 이후 태조, 정종, 태종, 세종에 이르기까지 4명의 임금을 모시면서 일인지하만인지상으로 일컬어지는 영의정(현, 국무총리)으로만 18년간을 봉직한 청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황희는 논변에 뛰어났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황희도 이조판서로 있을 때 충녕대군(세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 폐서인이 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지만 훗날 세종에 의해 다시 복권돼 태평성대를 이끈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왜? 작금에 와서 5백 년 전의 인물을 재조명 하느냐이다.
지금 정가에서도 황희 정승처럼 자기의 의견을 말하여 옳고 그름을 밝힐 수 있는 정치인이 없겠느냐마는 하나같이 상대가 들어서는 안 될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으니 안타까워서이다.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으로만 삶을 채울 수 없듯이 정치에서도 그렇다 할 수 있다.
정치 이전에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논변이라 할 수 있다.
인간사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는 속담이 있듯이 정치도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닌가?
근데 오늘날의 정치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말싸움으로 논변을 가릴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간다.
여, 야 각 당의 정강 정책도 그렇고 각 개인의 논리도 그렇다.
미물도 들어서는 안 될 말을 가려서 하지 않는 5백 년 전의 농부가 그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농부의 얘기를 듣고 공직생활 동안 논변으로 정치를 하고 민생 구휼에 힘써온 황희 정승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대를 다스리는 정치인들은 주면 얻게 되고 뒤로 물러나면 앞서게 되고 비우면 채워지는 삶에의 이치를 깨달았으면 싶다.
그리고 이를 자기의 정치역정에 접목시켜 정말로 민생을 위한 궤적을 그려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 정치인 이라면!…
http://www.changwonilbo.com/news/27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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