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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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염소대가리의 비열한 흉계
가짜 상표 단속이 바로 코앞에 닥쳤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노점상들에게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대팔이가 침묵을 깨고 악어 형님을 쳐다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근데 딱 깨놓고, 특사경 애들이 고발 없이는 단속 안 할 것 아닙니까? 단속도 단속이지만 햐! 이건 분명히 누가 찔렀다는 것 아닙니까?"
대팔이가 탁자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이자 그의 성난 목소리에 좌중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크게 술렁거렸다. 옆자리에서 누군가 낮게 욕설을 뱉었다.
"씨발, 누가 그런 짓을 하노…" 하고 중얼거리다 담배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이건 우리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 아닙니까? 같은 노점 중에 누가 뒤통수 친 거 아닙니꺼. 반드시 잡아내야 합니다"
액세서리 김 사장이 언성을 높이며 거들고 나섰다. 악어 형님이 김 사장을 손짓으로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잠시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유리컵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우리만 피곤하다. 이 건으로 시장판을 들쑤실 일은 없다. 어차피 고발장 없으면 짭새 나 누렁개들은 움직이지도 못한다. 문제는 김 사장 말대로 누군가가 우리를 팔아먹고 있다는 거다. 구 사장, 이번 기회에 니가 어떤 놈들이 장난을 치는지 한번 알아보면 어떻겠노?"
구 씨 형님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는 성냥을 꺼내 들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서만 굴렸다.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더, 문제는 오늘 조간신문에 국제시장 재개발 기사가 또 나왔던데, 하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 일단 모두가 알아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그 기사를 보긴 했어. 근데 전문가들 의견은 쉽지 않을 거라며? 대부분 영세 세입자들이고 노점상들 반발이 거세어 사업 진척이 쉽지 않을 거라 안 하더나? 국제시장 재개발은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 안 카나"
그러자 땅콩 장수가 걱정스레 말을 이었다. 그는 무릎 위에 올려둔 보따리를 한 번 더 끌어안았다.
"그래도 그 기사가 손님들 눈에 띄면 장사에 영향은 있습니더. `여기 곧 없어진다`는 말만 돌아도 발길이 줄어들 것 아잉교?"
뒤쪽에서 누군가 짧게 맞장구를 쳤다.
"맞다. 소문이 더 무섭다 아이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리어카 국수 장수 박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요, 솔직히 말하면 요 근방에서 장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중에 수상한 놈이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예. 이름은 모르겠는데, 파출소 쪽 하고 안면이 있다 카는 말을 들었습니다"
좌중이 술렁였다. 대팔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받아쳤다.
"그놈이 누군데예? 똑바로 말해보소"
박 씨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습니더. 그러니까 조심하자는 기지예"
땅콩 장수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요새 단속 나올 때마다 이상하게 딱 우리 쪽만 콕 집어서 온다 싶더라니. 그냥 되는 게 아니었구나"
그때 구찌 가방 장수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끼어들었다.
"근데 있잖습니꺼, 형님. 저번에 리어카 보관소 염소대가리 있잖습니꺼. 그 양반이 전에 보관소를 딴 데로 옮긴 사람 두고 한 말이 생각나네예. `내 주변에 특사경 하는 후배가 있는데, 내 말 한마디면 그놈은 골로 간다`고 대놓고 떠벌렸다 카는 말 들었는데예. 혹시 이번 일도 그 인간 짓 아닐까예?"
좌중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대팔이가 주먹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맞다, 나도 그 말 들었다. 그 인간이 이 골목 노점상들 리어카 보관료로 돈을 긁어모으면서, 말 안 듣는 사람들한테는 그런 식으로 겁을 줬다 아닙니꺼. 충분히 그럴 위인이다"
구 씨 형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라고 보면 지난번 단속 때도 이상하다 싶었다. 우리 쪽 골목만 딱 집어서 들이닥쳤으니. 그냥 지나가기엔 좀 이상한 대목이 있긴 했지"
악어 형님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확인도 안 된 말로 사람 몰면 안 된다. 근데 구 사장, 그 부분도 같이 좀 알아봐라. 염소대가리가 특사경 쪽하고 실제로 연결이 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냥 허풍인지. 그것만 확인되면 다음 수는 그때 생각하자"
구 씨 형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어 형님은 신문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기자 경험으로 볼 때 대기업들은 큰 사업의 경우 사전 작업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다. 언론을 통해 한두 해 전쯤부터 자기네들의 계획을 흘리며 여론 동향을 떠본다. 그리고 판이 무르익었다 싶으면 어느 날 불시에 시작하는 것이 재개발 철거 관련 시책이다.
땅콩 장사의 말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엉덩이를 비틀며 앉은 자세를 고쳐 잡았고, 또 다른 이는 괜히 빈 잔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그 적막을 깨뜨린 건 악어 형님이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천천히 두드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자, 오늘 나온 얘기 두 가지로 정리해 보자. 하나, 위조상표 건은 누가 찔렀는지 알아본다. 그냥 당하고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둘, 서면처럼 큰 상권이 우리를 무시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내일이라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보자"
그가 말을 마치자, 한쪽 구석에서 "알겠습니다 형님" 하고 낮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임은 어디까지나 비공식 좌담회였지만, 악어 형님의 말은 묘하게 중심을 잡았다. 결정권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으나, 반대가 없는 한 그의 말이 곧 방향이 되었다.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마담 영숙이 조용히 테이블 사이를 돌며 빈 잔을 치웠다. 쟁반 위에서 컵들이 부딪히며 짧게 소리를 냈다. 나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았다. 악어 형님도 그 순간 시선을 들어 그녀를 쫓았다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둘 사이에 무슨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둘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다방 안의 소음이 잦아들었고, 밖에서는 아직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문밖으로 나가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단 벽에 얼룩진 물자국, 곰팡내, 그리고 멀리서 스며드는 연탄가스 냄새까지. 이 건물도, 이 시장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근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사치한 생각이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을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인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