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김 칼럼]
|
![]() ▲ 김영국(대구가톨릭대 창업경영학과 교수 / 논설위원 / Saxophonist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반도체는 동아시아의 새 금광이다. 대만에는 TSMC가 있고,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세계가 인공지능을 외칠수록 두 나라의 반도체 공장은 더 바빠진다. 수출은 늘고, 증시는 달아오르고, 국가 경제지표는 번쩍인다. 그러나 이상하다. 나라가 부자가 되는데 국민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기업의 시가총액은 하늘로 치솟는데 청년의 밥값과 월세는 더 무거워진다. 반도체 부국의 축배 뒤에는 `거지 슈퍼맨과 `영끌개미`라는 씁쓸한 그림자가 서 있다.
대만의 풍경은 극적이다. 최근 대만 경제는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고 고성장을 기록했고, 1인당 국내총생산도 한국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는 대만 증시의 심장이 됐고,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기업으로 세계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온기가 국민 전체에게 고르게 퍼지는 것은 아니다. 대만 반도체 산업은 국내총생산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고용은 전체 노동자의 극히 일부에 그친다. 성장의 열차는 빠르게 달리는데, 대부분의 국민은 객차 밖 플랫폼에 서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거지 슈퍼맨`이다. 대만 젊은이들은 편의점 앱으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할인 도시락 재고를 확인하고, 저녁 시간이 되면 매장으로 달려간다. 30% 할인 스티커가 붙은 도시락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임무를 수행하는 슈퍼맨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쪽에서는 나노 반도체가 세계 기술 패권을 흔드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30% 할인 도시락 앞에서 생존의 속도를 낸다. 이것이 대만병의 민낯이다.
한국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영끌개미`가 있다. 집값을 따라잡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노후 불안을 견디기 위해 주식시장으로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르면 코스피가 웃고, 반도체 수출이 좋아지면 경제 전망도 밝아진다.
그러나 그 상승이 모든 국민의 삶을 같은 속도로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주식 계좌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대기업 정규직과 자영업자, 수도권 자산가와 지방 청년의 체감 경제는 전혀 다르다. 지수는 올라가는데 장바구니는 가벼워지고, 수출은 늘어나는데 내 월급은 제자리라는 불만이 여기서 나온다.
대만의 `거지 슈퍼맨`이 할인 도시락을 쫓는다면, 한국의 `영끌개미`는 호가창을 쫓는다. 대만 청년은 월세와 생활비 앞에서 허덕이고, 한국 청년은 집값과 대출이자 앞에서 숨이 찬다. 대만은 TSMC 한 기업에 경제의 운명이 과도하게 실리고, 한국은 `삼전닉스`라 불리는 반도체 대장주에 시장의 기대가 집중된다.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닮았다. 국가 대표기업은 세계와 경쟁하는데, 국민은 생활비와 경쟁한다. 나라의 성장률과 개인의 안도감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생긴 것이다.
물론 반도체는 축복이다. 대만이든 한국이든 반도체 산업 없이 오늘의 경제를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반도체가 아니라 반도체만 바라보는 경제 구조다. 한 산업, 몇 개 기업, 수도권과 일부 고임금 직종에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면 나머지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숫자는 부유한데 삶은 빈곤한 역설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림자 경제다. 통계에는 잡히지만 마음에는 닿지 않는 성장, 주가에는 반영되지만 밥상에는 오르지 않는 번영이다.
정책의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수출이 얼마나 늘었느냐만 물을 것이 아니라, 그 부가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시가총액이 얼마냐보다 청년이 집을 구할 수 있는지, 기업 이익이 얼마냐보다 중산층이 노후를 버틸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반도체 공장의 불빛이 밝을수록 그 주변의 그림자도 짙어진다. 성장의 빛을 자랑하기 전에 그 그림자를 줄이는 일이 국가의 책무다.
대만의 거지 슈퍼맨은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국의 영끌개미 역시 대만이 보아야 할 또 하나의 경고다. 반도체로 나라가 부자가 되는 것과 국민이 살 만해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진짜 선진국은 세계 1등 기업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 불안에 쫓기지 않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나라다.
대만병은 대만만의 병명이 아니다. 한국이 지금 성장의 분배, 산업의 다양성, 삶의 안정이라는 처방전을 쓰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우리 경제의 진단서에도 같은 병명이 적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