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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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 교육부 연구사 역임 / 한국상담학회 노인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수련감독 |
몇 해 전, 한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배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몇 미터도 가지 못하고 넘어졌다. 무릎이 까지고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아이는 다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몇 번을 넘어지고 또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두 바퀴 위에서 균형을 잡았고, 어느 순간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회복탄력성을 배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걷기를 배울 때도 수없이 넘어지고, 말을 배울 때도 수없이 틀리며,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실패를 경험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시 시도한다.
오늘날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역시 바로 이 힘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창의적이어야 하고, 더 전문적이어야 하며, 더 많은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실패 한 번에 무너진다면 그 능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결국 인간의 진짜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회복탄력성은 흔히 `마음이 강한 사람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회복탄력성을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어려움을 경험한 뒤 다시 균형을 찾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도 힘들고, 불안하고, 좌절한다. 다만 그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한 취업준비생의 사례를 보자. 그는 원하는 기업의 최종 면접에서 세 번이나 탈락했다. 처음에는 "운이 없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실패가 반복되자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에 성공했고, 가족들의 기대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한동안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그는 자신의 불합격 경험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면접 질문을 정리하고, 답변을 녹음해 들어보며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도 발견했다. 실패를 좌절의 기록이 아니라 학습의 데이터로 활용한 것이다.
결국 그는 네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다.
그의 성공은 뛰어난 스펙 때문이 아니었다. 실패를 성장의 재료로 바꾸는 회복탄력성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 역시 비슷하다. 그녀는 이혼 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며 원고를 썼다. 출판사들은 그녀의 원고를 열두 번이나 거절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내가 재능이 없나 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결국 전 세계 수억명의 독자가 사랑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만약 롤링이 첫 번째 거절에서 포기했다면 우리는 해리포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실패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계속 걸어간 사람들이다.
뇌과학은 이러한 현상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라는 영역이 있다.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는 경보장치 역할을 한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중요한 인간관계가 깨졌을 때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에는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이 있다. 바로 전전두엽이다. 전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돕는다. 편도체가 "끝났다"고 말할 때 전전두엽은 "이번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실제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들은 실패를 자신의 존재 가치와 연결하지 않는다. "나는 실패자야"가 아니라 "이번 시도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다르게 해볼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자기효능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흥미롭게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경험한 뒤에도 자기효능감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 속에서 배운 점을 찾아 다음 도전의 자산으로 삼는다. 자기효능감이 회복탄력성의 엔진이라면, 회복탄력성은 그 엔진이 계속 움직이도록 하는 연료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회복탄력성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았다. 어떤 사람은 절망 속에 머물렀지만, 어떤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대구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던 한 원장은 대면 수업이 중단되자 온라인 강의 제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메라 사용도 서툴렀고 영상 편집도 몰랐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배우며 강의를 만들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의 강의는 지역을 넘어 전국 학생들이 듣고 있다.
상황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문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찾는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긍정뇌(Positive Brain)라고 설명한다. 긍정뇌는 단순히 낙천적인 성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도 안전과 가능성을 먼저 해석하는 뇌의 습관이다. 문제보다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일수록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놀랍게도 특별한 비법은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 20~30분 정도 걷거나 운동하는 것, 충분히 잠을 자는 것,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한 일을 기록하는 것,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
이처럼 평범한 습관들이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큰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의지력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상 루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복되는 일상은 뇌에 예측 가능성과 안정감을 제공하고, 이는 다시 감정 조절 능력과 회복력을 높여 준다.
AI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더 빠르게 분석하며, 더 정확한 답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AI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이 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능력,상처를 의미로 바꾸는 능력,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능력,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다.
인생은 직선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돌아가고, 멈춰 서야 하는 산길과 같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최고의 경쟁력은 완벽함이 아니다.
바로 다시 걷는 힘, 회복탄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