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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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차 없는 노점상
"성호야, 니 르망 차 팔았다며?"
"예. 갑자기 돈이 좀 필요해서 며칠 전에 처분했습니다"
"장사꾼이 차도 없이 앞으로 우짤라꼬? 남의 도바에서 일당쟁이라도 뛸 기가?"
"돈을 빌려서라도 차를 구해봐야죠"
"야가, 지금 무슨 소리 하노? 우리 같은 노점상이 돈 빌릴 데가 있으면 뭐 하러 노점상을 하겠노. 그러지 말고 내 얘기나 한번 들어봐라"
악어 형님은 며칠 전 자신의 도바를 찾아왔던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겉보기에는 인물도 반듯하고 옷차림도 깔끔한 삼십대 중반쯤의 젊은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노점 장사를 배워보고 싶다며 형님을 찾아왔다고 했다. 형님이 노점상을 하려면 우선 물건을 싣고 다닐 차가 있어야 한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지금 당장은 차가 없지만 봉고차를 바로 구입하겠다고 할 만큼 의욕적이었다.
"처음에는 보름 정도 우리 도바에서 장사 연습을 시킨 뒤에 자리가 나면 따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의욕은 좋은데 혼자 길거리에서 장사할 만한 배짱은 아직 좀 약해 보이더라. 무엇보다 장롱면허라 물건을 싣고 빼는 것부터 걱정도 되고"
형님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뒤 말을 이었다.
"마침 대팔이한테 들으니 니가 차를 처분했다 카데. 그래서 내가 아주머니한테 처음에는 여자 혼자 하기 힘드니 우리 동생하고 당분간 같이 장사해 보라 했더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 카더라. 마침 대연동 못골시장에 도바 하나가 새로 나왔으니 내일부터 거기 가서 같이 함 장사 해봐라"
형님은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더니 나를 한 번 훑어보았다. 마치 이미 내 대답쯤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코스라고 불리는 여인들
사실 자동차를 팔고 나니 장사할 의욕이 뚝 떨어져 버렸다. 봄이 와도 차량이 없으니 본격적으로 장사에 나설 수가 없었다. 어쨌든 차량을 제공할 사람이 나타났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동업이라고 해서 손해 볼 일도 아니었다. 일당 높은 코스를 구하는 것 보다 여자동업자가 코스 역할을 대신한다면 그만큼 장사 경비가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노점상 세계에서는 손님이 뜸할 때 동업자가 손님인 척 물건을 구경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역할을 맡는 사람을 우리는 `코스`라고 불렀다.
코스는 대부분 마흔 중후반의 아주머니들이었는데, 하루 품삯도 제법 비쌌다. 하지만 능숙한 코스 한 사람만 있어도 매출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노련한 코스는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관심을 보이던 손님, 즉 `살`이 구입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노점상들끼리는 그것을 `콧구멍 쑤시기`라고 불렀다.
"사장님, 요거 하나 하고요. 저것도 같이 싸 주세요. 입어보고 사이즈 안 맞으면 반품되는 거죠?"
코스는 지갑에서 돈을 척 꺼내 보이며 시원스럽게 계산을 했다.
그러고는 막 물건을 사려다 망설이고 있던 손님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마치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고작 이런 물건 하나 사는데 뭘 그리 망설이나` 코스는 물건을 받아 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 살 생각이 없어 보이던 손님들마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물건에는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고,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빈손으로 돌아서지 못하는 법이었다.
노점상들의 장사는 결국 물건만 파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기술이기도 했다. 이렇게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려 구매를 유도하는 상술을 우리는 `콧구멍 쑤시기`라고 불렀다.사실 코스는 장사하는 사람보다 더 힘든 역할이었다. 자신의 말투와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곧 매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간혹 장사가 한창인 시점에서 예전에 속았던 손님과 코스가 다시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위한 연기라지만 그런 순간만큼은 서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동업자이자 코스 아주머니인 말숙 씨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마흔두 살로 나보다 두어 살 위였다. 이름은 조금 예스러웠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뚝한 코와 서글서글한 눈매. 당시 인기 드라마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단아한 미모였다. 시장 바닥보다는 백화점이나 문화센터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왕비다방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가 과연 노점 장사를 버틸 수 있을까?`
다방 안은 담배 연기와 잡담으로 어수선했다. 그런데 그녀만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다. 가늘고 흰 손가락 끝은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평생 거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손 같았다. 한마디로 귀부인 자태였다.
시장 바닥은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비가 오면 천막을 붙잡아야 하고, 단속반이 뜨면 재빨리 물건을 챙겨 달아나야 한다. 손님이 옷을 툭 던지고 가면 다시 개켜 올려야 하고, 흥정 끝에 돌아서는 손님도 붙잡아야 한다.
나는 괜히 옆 테이블 손님들이나 다방 마담 영숙 씨를 쳐다보며 시간을 끌었다.
저 얼굴이 시장 바람을 견딜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저 사람을 그런 바람 속으로 끌어들여도 되는 걸까.
뚜렷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내에는 아무래도 당신은 장사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녀가 먼저 웃었다. 입가에는 장난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호호.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봅네까?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여요? 그쪽도 선생님이나 공무원 같은 관상인데 노점상 하잖아요"
말끝이 묘했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함경도 억양이 잠시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장은 진하지 않았지만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그런데 목소리는 얼굴과 달리 굵고 허스키했다. 웃을 때도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어 형님의 사람 보는 눈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노점이 그녀를 견디게 할 수 있을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녀를 견뎌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이북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었다. 그러나 일찍 남편을 여의고 중학생 아들과 시부모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생활력 강한 여인이었다. 노점 옷장사를 배워 우암동 집 1층 빈 가게에 작은 옷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우리의 첫 상품은 여자 반팔 니트였다. 겨우내 비어 있던 자리들이 봄이 되자 하나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말숙 씨와 내가 들어갈 만한 빈 도바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대연동 못골시장, 창원 상남시장, 진해 경화시장을 번갈아 다니며 장사를 해야 했다. 말숙 씨와 함께하는 장사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제법 장사가 쏠쏠하게 잘 되었다. 그녀가 도바 앞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 서 있기만 해도 시장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귀부인 같은 분위기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한 사장님,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잖아요. 반팔 니트 위에 걸칠 수 있는 카디건도 같이 팔아봐요"
또 어느 날은 매상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사장님, 오늘도 생각보다 많이 팔았네요. 근데 지금까지 장사한 곳들은 너무 많이 빼먹었잖아요. 살들도 예전 같지 않고. 여기 도바도 이제 끝물인 것 같은데 딴 데로 옮기면 어떨까요?"
그녀는 노점상 은어가 재미있는지 사람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굳이 우리들 표현대로 `살`이라고 불렀다.
"말숙 씨가 코스니 살이니 하는 말은 아직 좀 어색하게 들려요. 그리고 지금은 성수기라 다른 시장에 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냥 여기서 조금 더 버텨봅시다"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이고, 친구들은 내 말투 듣고 이제 완전 전문가 다 됐다며 재미있어하던데요? 호호. 자리는 걱정 말아요. 그냥 수영 팔도시장으로 가기만 하면 돼요"
"말숙씨, 팔도시장은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되는 시장이지만 자리 없으면 아무나 못 들어가요"
"아! 그건 걱정 말아요. 사장님은 말숙이만 믿어보라니까요"
근거 없는 자신감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나는 평소보다 물건을 조금 더 받아 차에 싣고 수영 팔도시장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숙 씨는 괜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