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대표신문, 창원일보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6회 - 최칠근과의 조우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6회 - 최칠근과의 조우

창원일보 | 입력 : 2026/06/24 [16:54]
  • 카카오톡
  • 네이버
  • 인쇄

▲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수영동 팔도시장에 도착하니 말숙 씨가 먼저 와 있었다. 그녀 옆에는 덩치 큰 사내가 서 있었다. 명함에는 `(주)새부산건설 대표 최칠근`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영 팔도시장 번영회장과도 막역한 사이라고 했다. 최칠근은 번영회장의 도움으로 우리가 보름 정도 장사할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가 마련해준 자리는 기대 이상이었다. 목이 좋아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고 준비해간 옷가지들이 저녁이 되기 전에 다 팔렸다. 

 

장사가 끝날 무렵, 30대 초반의 파마머리 여자가 우리 쪽으로 반갑게 다가왔다. 잘 손질된 머리와 고급스런 옷차림. 자로 잰 듯한 걸음걸이나 태도가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아유, 언니는 여기 있었네. 난 그것도 모르고 또 몇 바퀴나 돌았잖아"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투덜거렸다.

 

"가스나야, 그러길래 도착하면 전화부터 하라고 했잖아. 팔도시장이 니 동네 못골시장만 한 줄 알았나?"

 

말숙 씨는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으면서도 곧장 핀잔부터 놓았다.

 

"한 시간째 찾았다 아이가. 시장 한 바퀴 다 돌고 왔네"

 

투덜거리던 여자는 더 이상 불평을 잇지 못하고 머쓱한 웃음만 지었다.

 

"언니도 참. 딴에는 도와주러 왔는데 벌써 끝내버리면 어떡해. 근데 오늘 내 페이는 누구한테 달라고 해야 하나?"

 

여자가 능청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지랄한다. 다 끝나갈 때 와놓고 무슨 소리고. 고마 밥이나 묵으러 가자. 최 사장이 오늘 한턱낸단다"

 

"정말? 그럼 진작 말하시지"

 

여자가 금세 표정을 바꾸며 웃었다. 심미영이라 했다. 말숙 씨와는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이였다. 

 

"언니, 오늘 매출은 어땠어? 완전 대박 난 거예요?"

 

"뭐, 자리 덕분에 그럭저럭"

 

"그럭저럭이 아니라 언니 얼굴 보니까 완전 성공이네. 헤헤!"

 

"가시나야, 니는 말 좀 줄여라"

 

"왜요? 팩트인데"

 

심미영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말숙 씨는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 도바를 거의 다 걷었을 무렵, 최 사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어이구, 오늘 완전 대박 났구먼"

 

그는 텅 빈 매대와 바닥에 가지런히 쌓인 빈 박스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최 사장님 덕분에 오늘 명당자리 차지했잖아요"

 

말숙 씨도 기분 좋은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명당은 무슨. 물건이 좋으니까 팔린 거지"

 

최 사장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 정도면 저녁은 내가 아니라 한 사장이 사야 하는 거 아녀?"

 

"아유, 벤츠 타는 신사가 우리 같은 노점상 주머니 털려하면 되나요"

 

말숙 씨의 반발에도 최칠근은 껄껄 웃기만 했다. 키가 보통 사람 머리 정도는 더 컸다. 체격도 좋았다.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 특유의 탄탄함이 엷은 셔츠 위로 드러났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의 몸집이 아니라 눈빛이었다. 웃고 있는데도 속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 눈.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것 같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한데 정작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 이야기는 별로 들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최칠근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의 벤츠를 타고 용호동으로 향했다. 심미영이라는 여자는 어디선가 온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경성대 근처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며 내게 한쪽 눈을 찡끗했다.

 

"한 사장님. 만나서 반가웠어요. 언니 말로는 퍽 재미있는 분이라던데, 담에 우리끼리 한잔해요. 호호"

 

그녀는 마지막까지 특유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남긴 채 서둘러 떠났다.

 

경성대 앞 번화가의 네온사인이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술집과 노래방 간판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거리에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말숙 씨는 조수석 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최칠근은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차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최칠근은 음악 소리조차 방해가 된다는 듯 볼륨을 낮췄다. 그의 굵은 손이 핸들을 잡고 움직일 때마다 계기판 불빛이 손등 위를 스쳐 지나갔다. 시장에서 보았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낮의 최칠근이 사람들 틈에서 웃고 떠드는 사업가였다면, 지금 운전대를 잡은 사내는 어딘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용호동 24번 버스 종점이 보이자 도로는 서서히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오른편 언덕 위로 천주교 공원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묘비들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떠 있었다. 낮에 보면 평범한 풍경이겠지만 밤에는 전혀 달랐다. 하얀 십자가 몇 개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왼편 아래쪽에는 예전에 나환자촌이 있었던 자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 철거된 뒤였지만 그곳 특유의 적막함만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흔적을 더 오래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최칠근의 벤츠가 고개를 넘어 바다와 가장 가까운 신축 2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1층은 개업 준비 중인 횟집이었다. 유리창 안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의자와 수족관이 보였다. 우리는 건물 외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은은한 조명 아래 작은 바가 나타났다. 실내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무엇보다 창밖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통유리 너머로 오륙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은 마치 밤을 지키는 파수꾼 같았다. 마흔 중반의 글래머 여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사장은 2층은 바, 1층은 고급 횟집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부동산과 사업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녀는 인근에도 적지 않은 땅을 가지고 있다며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자랑을 숨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초면의 어색함을 덜기 위해 네 사람 사이로 술잔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와인병이 두어 번 비워질 무렵, 안 대표가 다시 잔을 들어 올렸다.

 

"칠근 씨,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요. 그리고 말숙 씨는 처음 뵙지만 칠근 씨를 통해 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성호 씨까지, 오늘 우리 넷이 정말 멋진 시간 가져봐요"

 

안 대표가 잔을 더 높이 들었다. 또 다시 와인 병들이 비워졌다. 몇 번의 러브샷을 핑게 삼아 칠근의 팔이 어느새 안 여사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투박한 손끝은 그녀의 어깨선을 타고 젖가슴 아래 흘러내리듯 머물렀고, 안 여사 역시 그의 가슴께로 온 몸을 기울이며 거의 안기듯 잔을 받쳐 들었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안 여사가 칠근의 턱 끝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술잔을 비웠다. 칠근의 시선은 잔이 아니라 그녀의 붉은 입술에 머물러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말숙 씨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며 짧게 내뱉었다.

 

"흥, 보기 좋네요, 두 분"

 

"뭘 이 정도 갖고 그래. 원래 러브샷은 분위기로 마시는 거야"

 

최칠근은 말숙 씨의 냉소적인 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그래요?"

 

말숙 씨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스쳤다.

 

"그럼 성호 씨, 이참에 분위기가 뭔지 우리가 저쪽 사람들한테 제대로 한번 보여줄까요?"

 

그녀는 빠른 동작으로 양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내 입술에 대고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해왔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의 삼키지 않은 양주가 내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황망함과 달콤한 긴장이 동시에 전신을 확 스치고 지나갔다. 주변의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잠시 멀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칠근을 바라보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놀라는 기색도,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다만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내게 양주잔을 건넸다. 그 잔을 받으면서 나는 서서히 술이 깨고 있었다. 단순한 생일자리나 지인들의 모임 자리가 아니었다. 이 요령부득의 술자리에는 분명히 의도된 각자의 역할이 있었고, 나는 그 역할을 알지 못한 채 참가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 카카오톡
  • 네이버
  • 인쇄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