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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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 경남체육회사무처장 / 창원방문요양센터 센터장 / 보건행정학박사 |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많은 국민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되면서 토너먼트 진출의 문턱이 낮아졌지만, 대한민국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민이 기대했던 결과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실망한 이유는 패배 자체만은 아니었다.
스포츠에는 승패가 존재한다. 아무리 강한 팀도 질 수 있고, 약팀이 이변을 만들기도 한다. 최선을 다한 끝에 얻은 패배라면 국민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경기 운영과 반복되는 전술적 판단,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부족, 그리고 결과 이후에도 충분한 성찰과 책임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국민의 실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경상남도체육회 사무처장을 역임하면서 전국체육대회와 각종 국내 대회의 운영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축구뿐 아니라 핸드볼, 농구, 배구 등 다양한 구기 종목에서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지도자들의 치열한 고민을 현장에서 직접 보았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국제무대로 갈수록 선수 개인의 기량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판단과 조직의 준비다.
교체 타이밍은 적절했는지, 상대의 전술 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했는지, 선수들의 체력과 심리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었는지, 경기 흐름을 바꾸기 위한 결단을 언제 내렸는지가 승패를 좌우한다. 불과 몇 분의 판단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메달의 색깔을 바꾸며, 국민의 환호와 아쉬움을 갈라놓는 장면을 수없이 보아 왔다.
그래서 국가대표 감독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최고의 전문성과 경험, 냉철한 판단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지도자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다. 그만큼 권한은 크고, 그 권한만큼 책임도 무겁다.
스포츠는 결과의 세계다.
선수는 경기력으로 평가받고, 감독은 전술과 성적으로 평가받으며, 행정 책임자는 시스템과 리더십으로 평가받는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커야 한다. 이 원칙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제가 축구만의 과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아직도 능력보다 학연과 지연, 혈연과 인맥이 앞선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스포츠만큼은 달라야 한다. 선수는 실력으로 선발되고, 지도자는 능력으로 평가받으며, 행정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특히 국가대표팀은 국민을 대표하는 팀이다. 선수 선발과 지도체계, 운영 과정까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무엇이 부족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자세 또한 공적 책임의 일부다. 실패를 감추거나 외면하는 조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인 스포츠 선진국들은 결과에 냉정하다. 승리했을 때보다 패배했을 때 더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한다. 지도체계와 훈련 시스템, 선수 육성 방식, 행정 전반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과감하게 개선한다. 책임지는 문화는 사람을 희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패배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의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이번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에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이제는 과거의 명성이나 이름값이 아니라 현재의 지도력과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선수 선발과 지도자 선임, 조직 운영은 철저히 공정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한 평가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리더십은 영광을 함께 누리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결과에 가장 먼저 책임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도자의 존재 이유이며 국민이 지도자에게 부여한 신뢰의 무게다.
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투혼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한 시스템, 투명한 행정, 능력 중심의 인사,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는 리더십이 함께할 때 비로소 국민은 다시 대표팀을 믿고 응원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패배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를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다. 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은 모두 같다. 그 출발은 변명이 아니라 성찰에서, 책임 회피가 아니라 책임지는 용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결과에 책임지는 리더십이 바로 대한민국 축구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다.
이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