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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7회 - 1. 기억 속의 친구, 최칠근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7회 - 1. 기억 속의 친구, 최칠근

창원일보 | 입력 : 2026/07/0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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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다음날. 새벽까지의 과음으로 늦잠을 잤다. 말숙 씨로부터 문자메시지, 최칠근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문자메시지를 열어보니, 말숙 씨는 몸살 기운이 심해 며칠 쉬고 싶다고 했다. 나 혼자라도 하겠다면 어제 만난 심 여사를 자기 대신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갑작스런 해프닝이었지만 돌발적인 키스 사건 여파인 것 같았다.

 

선불한 도바 사용료가 아까워 혼자라도 장사하겠다고 문자를 날렸다.

 

곧이어 최칠근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우리가 어제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 익숙한 관계처럼 혼자 신나게 떠들어댔다. 결국 그와 안 여사와의 관계에 대한 변명이었다.

 

안 여사와 자신은 특별한 관계는 없었지만 말숙 씨가 유난히 나를 챙기는 탓에 순간적으로 오기가 발동해 그렇게 했다고 했다. 자기가 직접 말숙 씨에게 사과는 하겠지만, 체면상 바로 하기는 힘드니, 은근히 그런 사실을 내가 그녀에게 귀띔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어이, 근데 한 사장. 우리 서로 친구 하기로 약속했는데 말이지. 존댓말은 왜 하나? 사실 우린 원래부터 오래된 친구사이야. 자네가 신문기자 하다가 갑자기 노점상을 하고 있어 내가 깜짝 놀랐지만 말이야. 어젠 나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나도 처음엔 꽤 섭섭했었네. 사실 시간이 너무 흘러 모를 만도 했지만 말이지. 언제쯤 기억이 나시려나? 허허.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근데 어제 만났던 안 여사가 우리 한 사장을 아주 잘 보셨더구먼. 좋은 일을 소개할 테니 언제 한번 다시 만나자고 하던데. 괜찮겠지. 그렇다면 이번 토요일 날, 수영 삼거리에 있는 우리 주점으로 오시게. 그날, 심 여사랑 말숙 씨도 올 거고, 내가 어제 일 사과 겸해서 밸런타인 30년 산 한번 따주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저런 소도둑 같은 사내의 무엇이 말숙 씨의 마음에 들었을까. 혹시 돈 때문일까? 생각이 거기까지에 이르자 그녀에게 야릇한 실망감이 들었다.

 

근데 칠근이라는 자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 걸까. 분명히 그와 나는 오래전 친구사이라고 했는데. 하긴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다시 생각해보니 얼굴은 몰라도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분명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소리였다. 그 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리를 따라 잊고 있었던 오래된 장면이 기억의 언덕 저 편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칠근이와 닮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슴푸레한 기억의 창가에 떠 오른 주인공은 최칠근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었다. 이름 대신 숫자로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흰색 섬유로 만든 명찰 위, 일련번호 같은 숫자. 그 숫자가 푸른색 윗옷 오른쪽에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우중충한 회색빛 건물이었다. 철문입구 옆 세로로 붙여진 나무간판에 부산소년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음습한 긴 복도의 끝. 그곳엔 면회실이 있었다. 온기가 사라진 연탄난로는 뚜껑이 열린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긴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 앞에는 한 어머니와 아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었다. 나무의자의 시린 냉기가 얇은 바지를 뚫고 올라왔다. 그날의 냉기가 엉덩이로 스며들던 감각이 지금도 선명하다. 시린 의자에서 내가 일어섰을 때 어머니와 마주 앉아 있던 소년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 소리가 불러낸 회상과 유년의 기억회로를 거쳐 온 신호가 서로 맞닿으며 이어졌다. 그래, 맞다. 최철국. 그 아이의 이름은 철국이었다.

 

철국이는 한겨울임에도 얇고 남루한 옷을 걸친 채 울음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그의 어머니가 창살 안으로 손을 뻗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짙은 국방색 점퍼 차림의 교도관이 날카롭고 모진 목소리로 면회를 마칠 것을 다그쳤다.

 

"어서 나오시오. 시간 다 됐습니다"

 

철국이 어머니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며 교도관 앞으로 다가가 보따리 하나를 내밀었다. 교도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낚아채듯 받아갔다. 

 

그 낡은 보자기 안에는 내의 한 벌이 들어있었다. 철국이 어머니가 부업으로 일거리를 받아하던 가내 공장에서 만든 메리야스였다. 사실, 똑같은 옷을 그날 아침 나도 철국이 어머니로 부터 얻어 입었다.

 

"우리 철국이 입히려고 가져오면서, 성호 네 것도 가져왔다. 맞는지 한 번 입어봐라"

 

그날, 철국 어머니와 함께 동대신동행 버스를 타고 소년원을 찾아 갔다.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 면회 신청서를 써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는 열두 살, 그는 열세 살이었다. 철국이는 잦은 좀도둑질과 장기결석으로 학교에서도 이미 자퇴 처리된 아이였다. 그날, 면회실 차가운 공기와 의자에 스며들던 냉기, 그리고 창살 너머로 흘러내리던 철국의 눈물은 내 기억 속에 제법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그날 눈물 맺힌 아이 얼굴이 전화를 걸어온 칠근이의 목소리와 다시 겹쳐졌다. 그랬다. 최칠근이가 바로 철국이었다.

 

"어이, 한 사장"

 

허세와 넉살을 뒤섞어 내뱉던 목소리 속에서, 나는 여전히 울음을 참던 어린 철국의 떨림을 들은 듯했다. 어쩌면 그는 이제까지, 그날 차가운 면회실에서 멈춰 선 아이 그대로였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바꾸고, 세월이 흘러 제법 건장한 중년 사내가 되었어도, 그의 몸 속 에는 아직도 굴욕과 슬픔, 모멸감이 응어리처럼 남아 있는 아이가 있는 것 같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철국이를 나쁜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구보다 인정 많은 아이였다. 먹을 것이 생기면 언제나 자기보다 내 몫부터 챙겨주었다. 학교 육상부 대표였던 그는 급식 시간에 다른 아이들보다 옥수수 식빵을 하나 더 배급받았다. 그리고 남는 빵 한 개를 늘 반씩 쪼개어 내게 내밀었다. 4학년 때쯤, 그는 이미 주먹이 센 아이로 학교와 인근동네 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6학년 싸움 꾼 애들도 칠근이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범냇골 산복도로 동네에 위치하여 거친 아이들이 많은 학교였지만, 체격이 약한 나를 건드리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철국이의 이름이 항상 내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국이네는 우리 집 바로 옆에 살았다. 그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연탄불이 꺼지면 서로 밑불을 빌려줄 만큼 허물없이 지냈다. 철국이와 나도 어머님들 못지않게 친하게 지냈다. 그가 학교를 중퇴하기 전까지는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철국이 어머니는 집안에서 하루 온종일  재봉틀을 돌렸다. 인근 메리야스공장에서 부업으로 챙겨온 것들이었다. 때로는 장사 때문에 지방에 나가신 우리 어머니 대신, 그 분이 나의 끼니를 챙겨주시기도 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나는 비로소 철국이 모자의 사연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물론 대개가 어머니로 부터 전해들은 것들이었다. 

 

철국이 아버지는 60년대 초반, 외항선원들과 손잡고 일본이나 홍콩 전자제품 밀수로 돈을 번 사람이었다. 그 밑천으로 소규모 신발 공장을 차렸는데 마침, 수출 바람을 타면서 불과 몇 년 만에 공장을 몇 개나 돌리는 큰 부자가 되었었다. 돈을 벌게 되자, 철국이 아버지는 경리 겸 비서로 있던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칠근이 어머니는 결국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서야만 했었다. 그렇게 그들 모자는 어느 날 내가 사는 산동네에 나타났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칠근이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소개로 봉재 미싱 일을 시작해 생계를 이어갔다. 솜씨가 꽤 좋았지만 여유 있는 돈벌이는 아니었다. 양식이 떨어질 때면, 때때로 우리어머님께 보리쌀이나 돈을 빌려가곤 했다.

 

한편, 철국이는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동네 못된 형들이 칠근이를 자주 불러 내곤했다. 동네 만화가게가 그들의 본거지였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직업이 없는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좀도둑질, 아니면 패싸움이었다. 칠근이도 그들과 어울려 다니며 도둑질 할 때 망을 보거나 열쇠를 따는 일을 했다. 칠근이 덕분에 나도 열쇠 따는 방법을 배워 어머니께 자랑하다 거의 반죽음 될 정도로 매타작을 당하기도 했었다. 비슷한 시기에 칠근이는 퇴학을 당했고 결국 자기도 모르게 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었다. 신문에 까지 날 정도로 제법 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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