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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7회 - 2. 기억 속의 친구, 최칠근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7회 - 2. 기억 속의 친구, 최칠근

창원일보 | 입력 : 2026/07/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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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최칠근, 어린 시절 본명 최철국이 자신도 모르게 휘말린 사건은 집단 성폭행 사건이었다.

 

그 무렵 우리가 사는 산동네 아래에는 삼화고무라는 신발공장이 있었다. 한창 중학교에 다닐 만한 어린 나이의 여공들이 `시다`라는 일본식 명칭으로 불리며 그 회사에서 현장 작업을 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어린 여공 중 한 명이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동네 불량배들에게 강제로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여공이었다. 아무리 불량배들이라도 같은 동네 사람으로서 그 여공을 보호해 주어야 할 청년들이 오히려 마을의 금기를 깨뜨린 사건이었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마을에서 신문지국을 운영하던 사람이 신문사에 제보했고, 사건이 지역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때 칠근이도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동네 뒷산에서 여공을 집단 성폭행할 당시 철국이가 누군가 오는지 망을 보는 역할을 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폭행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 사건으로 그는 소년원에 가야만 했다. 

 

그날 철국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울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 철국이는 그렇게 나쁜 앤 아니에요. 그냥 아버지가 우리 모자를 버렸다고 실망해 빗나가서 그래요…"

 

나는 어린 나이라 그 말의 무게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내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다.

 

"철국이가 잘못 한 것은 맞지. 하지만 그게 다 그 애 탓만은 아니야. 세상이 애를 그렇게 몰아붙인 거야"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사건의 내막은 철국이에게 너무도 억울한 것이었다. 철국이 어머니는 담당 형사가 내민 진술서에 지장만 찍으면 아들이 바로 풀려날 거라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서류는 거꾸로 철국이의 죄를 인정하는 진술서였다. 담당 형사들이 그녀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천하에 몹쓸 놈들이지. 인두겁을 쓰고 그 불쌍한 모자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담"

 

어머니는 치를 떨며 말씀하셨다. 정작 죄를 지은 불량배 놈들은 돈을 써서 모두 풀려나고, 애꿎은 철국이만 희생양이 되어 소년원으로 끌려갔다.

 

당시 철국이 어머니는 혹시 전남편이 철국이를 빼앗아 갈까 봐 철국 아버지에게 연락하지 못했다고 했다. 재판이 다 끝나고, 경찰과 검찰에 속았다는 것을 안 뒤에야, 기별을 넣었다고 했다.

 

창살 너머로 남루한 옷차림의 소년이 보였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 애써 울음을 삼키던 표정. 유달리 붉은 뺨 위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자 철국이 어머니도 창살 사이로 손을 뻗으며 흐느꼈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1년쯤 뒤, 철국이 어머니와 나는 이른 아침부터 소년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철국이가 석방되는 날이었다. 그날 부산에는 보기 드물게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아침 도로는 빙판이 되어 몹시 미끄러웠다. 찬바람이 뺨을 베고 지나갔지만, 철국이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며칠째 뜬눈으로 지낸 사람처럼 눈가가 퀭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잠시 후 철문이 덜커덩 열렸다. 철국이가 회색 잠바 차림으로 소년원 문을 나섰다. 철국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철국이…!"

 

그녀가 떨리는 팔로 아이를 끌어안으려 다가갔다. 그때였다. 검은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정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타이어가 얼음 위에서 끼이익 소리를 냈다. 차 문이 열리고 고급 외투를 걸친 50대 중년 신사가 내렸다. 남자의 옆에는 회사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철국이를 향해 손짓했다.

 

"철국아, 이리 와라"

 

철국이는 잠시 머뭇거리며 우리 쪽을 보더니 천천히 자가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지고 있었다. 그는 끝내 어머니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차 문이 닫히고 검은 세단은 눈길을 미끄러지듯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철국 어머니의 손이 허공에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그녀의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 하얀 눈이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린 날이었다.

 

며칠 뒤, 내가 살던 산비탈 동네는 갑작스러운 비보로 술렁거렸다. 철국이 어머니가 오래 동안 사용하지 않는 동네 우물에 몸을 던졌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동사무소와 구청을 들락거리며 도움을 받아 철국이 어머니의 장례를 간신히 치러 주셨다. 연락할 곳이 없어 상주로 나설 사람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친구 철국이를 대신해 하루 동안 상주를 맡게 하셨다. 그렇게 장례를 마친 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울었고 며칠을 앓아누우셨다.

 

나는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철국이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그를 떠올리게 하는 몇 번의 간접적인 추억이 있었다.

 

대학교 때 남포동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뒷골목에서 깡패들과 크게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골목 어두운 곳에서 "야, 걔들 건드리지 말고 빨리 철수해"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고등학교 때, 범일동 보림극장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게 돈을 빼앗으려던 폭력배들 중 한 놈이 내 이름표를 보더니 말했다.

 

"니 철국이 친구 맞제?"

 

그들은 나를 그냥 보내주었다.

 

그후, 직장에 들어간 지 몇 년 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떻게 알았는지 양복 차림의 깍두기 두 명이 철국이 어머니 이름으로 된 조화와 부조금을 들고 찾아왔었다.

 

어쨌든 내 친구 철국, 아니 칠근이가 오랜 세월을 건너,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날 이후 칠근이와는 몇 번의 통화와 만남이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로 돌아가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봄장마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봄철 옷을 제대로 팔지도 못한 채 장사를 쉬어야 하는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칠근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야, 니 지금 뭐 하니?"

 

"비만 주룩주룩 오는데 뭐… 집에 있지"

 

"야, 내 말 잘 들어라. 이번 주말에 무조건 안 여사 만나야 된다. 이게 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이다"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의 말투에는 묘하게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터닝포인트라… 인생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 그리고 안 여사라는 그 여자, 나를 언제 봤다고 냉큼 여자를 소개해 준다는데 아무래도 찜찜해. 뭔가 계산부터 깔고 나를 만나자는 거 아냐?"

 

칠근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야, 사람 사는 게 다 계산이야. 네가 지금 무슨 선택지가 있다고 그런 소리 하노. 솔직히 말해라. 이 빗속에 노점상 언제까지 붙들고 살 거고?"

 

그는 늘 그랬듯 끝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칠근이의 호출을 받았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만났던 수영오거리의 주점이 아니라 부산호텔 근처의 고급 룸살롱이었다. 이곳도 칠근이가 경영하는 곳이었다. 여기말고도  조방 앞의 유명 나이트클럽에 자기 지분이 꽤 있다고 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금융가로 이름난 구역이라 술집이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었다. 겉보기에는 단정한 사무실 빌딩이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지하로 내려가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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