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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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정책포럼 이사장 |
앞서 본 란에 게재된 <폐지 리어카 없는 합천의 역설: `노동`을 강요하는 복지국가는 없다> 편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대도시에 비해 외견상 폐지 리어카가 잘 보이지 않는 농촌이라 해서 어르신들의 삶이 온전히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대도시 배관망 끝자락에서 발생하는 가혹한 에너지 격차와 일상화된 의료 공백이라는 사각지대 속에서 농촌 노인 빈곤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대규모 개발사업과 각종 지표 중심의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화려하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오늘을 일구어낸 주인공이자, 지금 이 순간 농촌 소멸의 최전선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노인들의 존엄과 삶의 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빠져 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청춘을 바쳐 한강의 기적과 근대화를 이룩한 주역들에게, 늙어서까지 생존을 위해 힘겨운 육체노동을 이어가라고 떠미는 사회는 결코 진정한 복지국가라 할 수 없다. 이제는 노인 빈곤의 문제를 단순한 노동 강요나 현금 살포식 땜질 행정으로 풀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복지 생태계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통계의 착시와 농촌 일자리 정책의 잔혹사현재 한국 노인 빈곤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 농촌 노인은 도시 노인에 비해 소득 빈곤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몸이 부서져라 아파도 생계를 위해 밭으로 나가야 하는 비자발적인 노동 참여 비율이 절대적이다.
이러한 비극 위에서 지자체가 내놓는 일자리 정책은 심각한 `미스매치`마저 낳고 있다. 최근 합천군이 일자리 구조개혁의 첫 번째 승부수라며 내놓은 `산지(山地) 이음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군은 5ha 규모의 대형 임업실습장을 조성하고 귀산촌 아카데미를 운영해 도시 청년과 은퇴 세대를 임산업 전문가로 육성하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이는 현장의 수요와 대상자의 특성을 전혀 읽지 못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대도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 은퇴한 고학력ㆍ고숙련 오팔세대(50~69세: `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OPAL)에게 1차 산업 중심의 단순 임업 실습이나 가공 수준의 일자리를 내미는 것은 이들이 평생 쌓아온 지적 자본과 역량을 철저히 사장시키는 일이다. 산림자원을 활용한 고부가가치화라는 허울 좋은 포장 아래, 결국 은퇴자들에게 또다시 고된 육체노동을 고집하는 구시대적 발상에 불과하다. 더욱이 관할 면적이 넓고 이동 장벽이 높은 농촌의 특성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덩치만 키운 사업 설계는, 어르신들과 은퇴자들의 삶을 진정으로 위로하지 못한다.
강요된 노동을 넘어, 인구유입과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맞춤형 역할로이처럼 외부에서 유입되는 은퇴 세대와 고령층에게 무작정 단순 육체노동을 강요하는 복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은퇴하는 노년층과 베이비부머 세대는 단순히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의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전략 자원이다.
따라서 합천군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노인복지 및 인구정책은, 어르신들을 늙음과 빈곤의 굴레 속에서 억지로 일터로 내몰아 노동을 강요하는 방식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국가는 마땅히 책임져야 할 기본적 생계 보장을 `노인일자리`라는 이름의 얄팍한 노동 강요로 대체하지 말아야 하며, 이들이 지역에 안착할 수 있도록 특성에 맞는 정당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먼저, 평생 농촌을 지켜온 고령 원주민(후기 실버세대)에게는 획일적인 육체노동 대신 그들의 연륜과 살아온 세월에 걸맞은 세련된 미래형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예컨대 새로 유입되는 귀농귀촌인들이 지역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멘토가 되거나, 합천군 마을 곳곳의 살아있는 역사와 기억을 기록하는 마을 학예사 및 문화해설가로 활동하는 방식이다. 또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는 참된 어른이자 좋은 선생님으로서, 전후 세대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주인공들의 품격에 맞는 명예로운 사회적 역할을 맡겨야 한다.
동시에, 대도시에서 은퇴 후 합천으로 유입되는 고숙련 오팔세대에게는 그들의 전문성과 눈높이에 맞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이들을 단순 임업 현장의 육체노동으로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귀농 창업자를 위한 경영ㆍ기술 컨설팅`이나 지역 행정ㆍ마케팅 자문 등 지역 문제를 푸는 전문가 멘토로 활약하게 해야 한다. 이들의 기획력과 노하우를 살려 적정 소득을 보전해 준다면, 대도시 인구를 합천으로 유도하는 확실한 인구유입 및 지방소멸 대응 카드가 될 것이다.
노인 빈곤 해결을 넘어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앞서 짚어본 바와 같이, 앞선 칼럼에서 마주한 심각한 노인빈곤의 현실은 단순히 푼돈을 쥐어주는 일자리 사업이나 일회성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다. 노인 빈곤의 문제를 단순한 노동 강요로 때우려 하거나 시혜적인 복지로 치부하는 낡은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농촌 노인 빈곤의 해법은 이제 미래 인구분산 전략, 지방소멸 대응 전략, 그리고 청년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다각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즉, 은퇴자와 고령 원주민에게 강요된 노동의 굴레를 벗기고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와 시대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이들에게 지역 특성에 맞는 가치 있는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인 빈곤 문제의 해결이 곧 지방소멸 대응과 인구 증가라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과감하게 실행되어야만 한다.
이 거대한 전환의 실천적 대안이 바로 예산의 선순환 구조인 `로컬 루프(Local Loop)` 생태계다. 지자체의 복지 예산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소득과 복지로 순환하도록 만들며, 청년들에게는 어르신들의 지혜와 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기획 오퍼레이터`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마을 단위 재생에너지나 스마트 돌봄 안전망을 구축하고, 은퇴 전문가와 어르신들은 이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상생의 구조 속에서 복지 예산이 청년 일자리로 흐르고, 그 청년들이 이주해 온 노년의 삶을 돌보는 선순환이 완성된다.
`경력 연장형 플랫폼`으로 여는 합천의 미래형 복지ㆍ인구 전략농촌 노인들의 빈곤 탈출을 위해 그들에게 또다시 호미를 쥐여주며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나 가혹한 노동 강요라는 손쉬운 길 대신, 거시적 차원의 인구유입 정책 및 기본적 생존권 보장과 연계하여 노인의 존엄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지역의 고령 원주민은 마을의 문화해설가이자 멘토가 되고, 도시에서 온 은퇴자는 청년의 경영 멘토가 되며, 청년은 기술과 기획력으로 어르신과 지역을 돌보는 생태계. 노인 빈곤과 은퇴자 활용의 문제를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닌 지방소멸 대응과 청년 일자리, 공동체성 회복의 관점으로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합천군만의 `경력 연장형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구축함으로써, 벼랑 끝에 선 농촌을 가장 따뜻하고 매력적인 미래형 복지ㆍ인구 공동체로 재탄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