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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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4월 중순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비가 며칠 더 이어질 거라고 했다. 빗속 장사판은 고스란히 꽝이었다. 말쑥 씨는 비가 그칠 때까지 집에서 쉬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대뜸 귀에 익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어형님이었다.
"야, 한성호. 비 온다고 뒷짐 지고 앉아 있으면 밥은 누가 떠먹여 주나?" 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형님, 노점장사 비만 오면 끝아입니까? 젖은 옷을 누가 사겠습니까.지난 주말, 비 올 때 남포동 지하철 역구내에서 팔다가 쫓겨났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거가? 사람이 입에 풀칠은 해야지"
악어 형님이 잠깐 뜸을 들였다.
"니, 일당바리라도 해볼래? 별거 아이다. 몸만 가면 된다. 쪼매 특이한 일인데, 옆에서 보면 배울 것도 있을 끼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루 이틀 벌이가 없는 것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비가 며칠씩 이어지면 사정은 달라졌다. 노점상에게 장사를 못 하는 날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었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사람에게 하루 벌이가 끊긴다는 것은 곧바로 생활비가 줄어드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마음을 정했다.
"형님, 어디든 넣어만 주십시오. 비 때문에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요"
"좋다. 그럼 내일 아침 너희 집 앞으로 내가 차 갖고 간다. 전화하면 바로 나올 준비 해라"
전화를 끊었다. 방 안에는 다시 빗소리만 남았다. 창밖 물웅덩이 위로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잔물결이 번졌다.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갈치시장, 신동아 회센터 앞에는 우비를 뒤집어쓴 장사꾼 아낙네들이 손수레를 밀며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고무장화가 젖은 길 바닥을 밟을 때마다 철벅철벅 물이 튀었다.
"빨리 비켜 보이소!" "다쳐도 난 모릅니데이. 차 들어갑니더!" 얼음과 생선을 가득 실은 손수레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비닐을 덮어씌운 상자 틈으로 은빛 갈치 꼬리가 삐죽 나와 있었고 수레 밑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보고 가이소. 오늘 물건 참 좋습니더!" 흥정하는 목소리 사이로 칼이 도마를 치는 소리가 났다. 손수레 바퀴가 콘크리트 바닥의 홈을 지날 때마다 덜커덩거렸고, 가게 안에서는 빈 스티로폼 상자를 끌어내는 소리가 이어졌다. 천막마다 빗물이 고였다. 아낙네 하나가 기다란 막대로 천막 아래를 툭 밀어 올리자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이고!" 하며 몸을 피했고, 물을 쏟은 아낙네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웃으며 다시 손을 놀렸다.
천막들 사이사이로 바다는 비에 젖어 희뿌옇게 보였다. 멀리 정박한 배들도 윤곽만 흐릿했다. "싱싱한 거 보고 가이소!" "아지매, 그냥 가지 말고 이것 좀 보이소!" 봄비가 며칠째 내려도 자갈치 시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바다는 흐렸고 골목은 젖어 있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만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의 자갈치는 그렇게 젖은 채로 하루를 벌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군용 물품과 잡화점이 빽빽하게 들어선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 안쪽에는 천막을 덧대어 만든 허름한 점포들이 이어져 있었고, 악어 형님은 그중 한 곳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천막 안쪽에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쉰 중반쯤 되어 보였다. 낡은 잠바에 빛바랜 바지, 발에는 오래 신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삐쩍 마른 체구에 옷차림만 보면 시장통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장사꾼이었다. 그런데 그의 자세가 좀 달랐다. 한쪽 다리를 느슨하게 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골목 안의 움직임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낡은 잠바 소매 아래로 금빛 롤렉스 시계가 언뜻 드러났다. 옷차림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잠바 안쪽으로는 흰 셔츠 깃이 반듯하게 올라와 있었다. 시장통 장사꾼치고는 흐트러짐이 없는 입성이었다.
악어 형님이 그를 가리켰다.
"성호야, 인사해라. 이 형님이 바로 자갈치의 전설, 양 사장님이시다"
그러고는 양 사장을 향해 말했다.
"형님, 내가 이야기했던 동생입니다. 국제시장 판에서 장사 좀 해본 놈인데 머리가 나쁘진 않습니다. 오늘부터 옆에서 많이 배우고 도와드리라 했습니다"
양 사장은 악어 형님의 소개에도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봤다. 짧은 눈길이었지만 옷차림이며 신발등 입성은 물론이고 상대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꽤 짚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내려왔다.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 두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니 알아서 잘해라. 나는 고마 간다"
악어 형님은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손을 휘이휘이 흔들며 빗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양 사장과 나, 단둘이 남았다. 양 사장은 홀쭉한 하관에 옹골진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별명이 `서생원`이라 했다. 영락없이 쥐를 닮은 얼굴상이었다. 그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우님 소문은 악어한테 더러 들었소. 국제시장에서 옷 장사했다지?" 악수를 하면서도 그의 작은 눈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예" "손님이 와서 옷값부터 깎아달라 하면 우째 하노?"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바로 깎아주진 않습니다. 일단 입혀보고 어울린다고 해야지요. 마음이 붙고 나면 가격 이야기를 합니다" 양 사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안 산다 하면?" "보내줘야지요. 억지로 붙잡으면 다음에 안 옵니다" 그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자넨, 장사꾼이 손님 그냥 보내는 것 안 아깝나?" "아깝지요. 그래도 살 마음 없는 사람 붙들고 있는 동안 진짜 손님을 놓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양 사장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라면 자넨, 아직 멀었네" 나는 뜻밖이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십만 원, 백만 원짜리 물건 파는 것도 아니고, 노점에서 옷 몇 장 파는 장사 아이가. 도바 앞에 발까지 멈춘 손님을 그냥 보내면 우짜노" "그래도 살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살 마음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게 장사꾼이지" 양 사장이 길게 뿜은 담배 연기가 내 귓가를 스쳤다.
"악어 아우 말 들으니까 자네, 장사 초짜 때 국제시장 첫날부터 엄청 팔았다 카던데, 정말이가?" 나는 피식 웃었다. "운이 좋았지요" "운?" 양 사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악어 말로는 그날 노점판에서 신기록을 세웠다던데. 처음 나온 놈이 하루 종일 손님 붙들고 악착같이 팔았다 안 하더나" 나는 그날 국제시장 좌판에서 정신없이 손님을 불러 세우던 일이 떠올랐다. 옷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목이 쉬는 줄도 몰랐고, 점심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양 사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때 자네 마음 다시 생각해봐라. 오늘 하나 못 팔아도 그만이다, 그런 마음이었나?"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그가 무릎을 한번 쳤다. "그게 장사하는 마음이라. 하나라도 더 팔아야 되고, 내 앞에 선 손님은 놓치기 싫고. 그 간절함이 있어야 사람이 달라진다"
그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내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장사는 결국 일대일 승부야. 손님하고 내가 딱 마주 서는 순간에는 다른 사람 아무도 없어. 그 몇 분 안에 손님이 나를 믿게 해야 돼. 처음부터 물건을 믿으라고 들이대면 안 된다. 먼저 파는 사람을 믿어야 물건도 믿는 법이거든" "그걸 어떻게 합니까?" 나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양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 말 몇 마디로 배울 수 있으면 개나 소나 다 장사하지. 살 사람 눈을 봐야지. 물건 만지는 손도 보고. 값 물어놓고 돌아설 때 진짜 가는 사람인지, 한번 붙잡아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인지도 알아야 하고" 그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어 번 두드렸다.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고, 슬쩍 놔줘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내 말을 믿기 시작했다 싶을 때가 딱 오는거야" 그가 손가락을 딱 소리나게 튕겼다. "그때 돈이 나오는 거야" 양 사장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와서 멈추었다. "자네, 장사꾼한테 제일 무서운 게 뭔 줄 아나?" 나는 대답없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안사면 말고 하는 식의 애시당초 포기하는 마음이야. 장사꾼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눈에 힘부터 빠지는 거지. 말에도 힘이 없어지고. 손님은 그런 거 귀신같이 안다" 양 사장이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구두 끝으로 비벼 껐다.
"자네도 이미 경험해봤잖아. 국제시장 첫날에. 그때는 누가 가르쳐줘서 그렇게 많이 팔았나? 아니지, 결국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절실하니까 그런 거야. 무슨 일을 하던 간절한 놈이 이기는 게 세상 이치인거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막 안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말로 백 번 듣는 것보다 오늘 한번 보는 게 낫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거 옆에서 잘 봐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