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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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방송이 끝나고 헤드폰을 벗었을 때 온 몸에 진땀이 배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부산 사투리를 조심하다보니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나오자 지혜가 말했다.
“잘했어요”
“잘했긴요, 피디들은 원래 출연자한테 다 그렇게 말합니까?”
“못한 사람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방송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한 권의 책을 방송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책 한 권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찾아야 했고, 왜 그 책을 썼는지 알아야 했다. 이미 나온 인터뷰와 평론도 뒤져야 했다. 작가가 직접 출연하는 날이면 뻔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질문도 준비해야 했다.
방송에 나갈 음악을 함께 선정하는 일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책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질 때 음악 한 곡이 숨을 틔워주기도 했고, 때로는 한 곡의 노래가 다음 이야기를 열어주기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책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글씨를 썼다.
밤늦게까지 한 문장을 붙잡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혜는 내가 준비한 원고를 읽고 가차 없이 줄을 그었다.
“여기 너무 길어요”
“중요한 대목인데”
“중요하다고 다 읽으면 방송 두 시간 해도 모자라요”
“그런식으로 작가 말을 피디가 자르면 어떻게 합니까?”
“라디오는 논문이 아니에요. 귀로 듣다가 놓치면 끝이에요”
“피디 권력이 상당히 무섭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제 말 잘 들어야 해요”
그 무렵, 방송이 끝난 후 지혜와 함께 방송국 앞 포장마차식당에서 저녁 겸 술 한잔을 하는 일이 나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방송 전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찻집에 마주 앉아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책 한 권을 놓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작가한테 이걸 물어보고 싶은데요”
“한 선생님, 그 부분 내용이 너무 철학적이라 어렵지 않을까요?”
“작가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안 어렵습니다”
“설명 채 꺼내기도 전에 청취자는 먼저 채널 돌려요”
“요즘 같이 고학력시대에 청취자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라디오 방송에서는 쉬운 말로 진행해야 해요. 불문율이랄까.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서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라야 해요”
그 무렵 나는 한 주를 두 개의 세계로 나누어 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좌판을 펴고 손님과 흥정을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책을 읽고 자료를 뒤지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한 사장이라고 불렀고, 방송국에서는 문화비평가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소개하는 것은 책 한편이지만 작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다른 글들도 읽어야했다.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고, 원고를 만들고 방송을 준비하려면 이틀 정도는 필요했다. 좋아하는 일과 먹고사는 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느 날 방송을 마치고 나오는데 지혜씨가 정색을 하고 나를 쏘아보았다.
“도대체 오늘 왜 그래요?”
“뭐가요?”
“방송 내내 딴생각하는 사람 같던데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지혜씨, 나 이거 아무래도 오래 못 할 것 같습니다”
지혜씨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왜요?”
“돈이 안 됩니다”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출연료 때문이에요?”
우리는 방송국 스튜디오실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책 한 권 읽고 자료 찾고 방송 준비하려면 사흘은 들어갑니다. 그동안 장사를 제대로 못 해요”
“그래도 선생님 이 일 좋아하잖아요”
“나는 이 일이 싫어서 그만두려는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여건이 안 되니까요”
스튜디오실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전에 제가 도망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죠?”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 계속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요?”
“지혜씨의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을겁니다”
그녀의 말을 인정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었다. 내가 싫어지면 떠난 적도 있었고, 답답하면 다른 데로 간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부 그런 건 아닙니다. 먹고 살려고 움직인 적도 많아요. 내가 굳이 이 장사를 좋아해서 밀양 가고 자갈치 가고 한 건 아니니까요”
“알아요”
“아니요. 지혜 씨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 장사를 안 하면 오늘 벌 돈이 없어지는 사람하고 월급날이 정해져 있는 사람은 각자 사고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렇게 쏘아붙이다시피 말하고 나니 금방 후회가 되며 겸연쩍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지혜씨가 내 말을 조금이라도 수긍하듯 고개를 서서히 끄덕였다.
“그래요, 내가 다 알 수 없겠죠. 그런데 그것하고 선생님이 계속 떠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지금 말씀 하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먹고살기 위해 장사하는 건 이해해요. 방송 일을 그만두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무슨 길이 나타나도 먼저 거기서 빠져나갈 이유부터 찾는 사람 같아요”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궁지에 몰린 아이처럼 나의 말투는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에게 투정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반응이었다.
“나도 몰라요”
약간은 볼멘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어투도 나를 닮아 있었다.
“다만 선생님은 길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길도 자기 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 같을 때가 있어요”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송 일을 그만두자마자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장길녀 여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천동으로 나오라는 말이었다. 삼익아파트 단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바다 경관이 좋은 아파트로 나를 데려갔다.
“이 집 지난 주에 내가 가계약 해놓았는데, 한 선생 보기에 어때?”
“채광도 남향이고 인테리어도 깨끗하고 그런대로 괜찮은 집 같네요?”
“스물다섯 평인데 혼자 지내기에 적당할거야”
“누가 말입니까?”
장길녀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누구긴 누구야. 우리 한 선생 살라고 샀지”
“아니, 내가 왜 여기 삽니까?”
“한 선생, 언제까지 장터 주변에서 떠돌아다닐 거야. 이제 자기 자리가 있어야지”
집은 비어 있었다. 거실 창으로 광안리 해수욕장과 바다가 한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반듯한 방과 넓은 거실을 둘러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인 자리가 정해져 있는 집 같았다.
“잘 봐, 어때?”
“좋네요”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초량 집은 차차 정리하고 바로 여기 들어와”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또 무슨 생각을 해?”
장길녀는 내 태도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공부도 다시 시작해. 석사까지 해놓고 왜 거기서 멈춰 있어?”
“이 나이에 박사라도 시작하라는 겁니까?”
“머리 좋고 돈 있고 시간 있는데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
그녀는 대학교 쪽에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다녔던 대학원 석사과정 때 지도교수가 지금은 부산 도시계획 분야에서 영향력이 커져 있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장길녀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도시계획분야 쪽에서 자리를 잡으면 그녀가 벌여놓은 사업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언질이었다.
나는 빈 거실 한가운데 서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내가 살아갈 십 여 년 뒤의 모습까지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지혜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길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길도 자기 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길은 내 눈앞에 있었다. 오히려 너무 반듯해서 문제였다. 장길녀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가면 당장 생활비를 걱정하며 좌판을 펼 필요도 없었다. 공부를 계속해 사회적 성공을 바라볼 수있는 길이었다.
“왜 말이 없어?”
장길녀가 내 대답을 채근했다.
“내가 주는 게 싫어?”
“싫고 좋고가 아니라 받고 나면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아서요”
그녀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 선생, 그건 쓸데없는 자존심이야. 내가 그냥 주는 것이 아니야 투자라고 생각해”
나는 부정하지 못했다. 지혜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인지, 누구에게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나 자신도 그 둘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열흘 쯤 뒤 지혜씨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한동안 내가 없었던 사이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나는 시장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며칠 전 보았던 남천동 아파트가 계속 남아 있었다.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혜와 마주 앉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내가 중요한 무엇인가를 그녀에게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입을 열었다.
“지혜 씨”
“네?”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녀가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장길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지금은 남천동에 집까지 구해놓고 들어오라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지혜는 중간에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분하고 둘이 어떤 사이예요?”
마침내 그녀의 추궁 아닌 추궁이 시작되었다.
“나도 지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선생님을 좋아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혜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은요?”
“그런 관계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렵다는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맞다는 뜻이에요?”
“지혜 씨!”
“선생님은 그분을 계속 만나면서 나도 만난 거예요?”
그녀의 말에 노기는 있었지만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내가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지혜가 내 말을 들으며 천천히 목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선생님이 왜 그렇게 사는지 정말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남이 만들어놓은 길로 가기 싫어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고요”
그 말이 내게 아프게 들려왔다.
“그런데 그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을 계속 만나고 있었네요”
“그 길로 가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흔들렸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녀의 말끝에 울음기가 배어 있었다. 작고 가지런한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난 뒤, 핸드백을 챙겨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오늘은 이만 저 먼저 갈게요”
“지혜 씨. 제발 내 말 좀 더 듣고 가요”
“제가 지금 선생님 말 더 들으면 마음이 힘들 것 같아요. 그냥 보내주세요”
며칠 뒤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 계절이 지나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장길녀에게는 내가 그 후로 연락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을 다시 써보라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자리까지 마련해놓았다. 그런데 나는 어느 쪽에서도 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 부표는 떠내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혜가 말했었다. 어딘가에 묶여 있기 때문에 부표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아직 닻을 내릴 곳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정말 알 수 없었다. 내게 닻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닻을 내릴 만하면 내 스스로 밧줄을 잘라 버리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