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는 전 세계 지진의 90%가 일어나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다. 환태평양 지진대는 태평양에 접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부터 북미와 남미 지역까지 이어지는 화산대로 `불의 고리`라고 불린다.
남미 국가 중에서도 `불의 고리`에 가장 많이 노출된 칠레에서는 거의 매일 지진이 일어난다. 진동을 느낄 수 없는 `무감(無感) 지진`을 포함해 연간 200만 번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 8.0 이상의 강진도 연간 1회 이상 기록된다. 칠레에서는 또 화산 활동으로 항공기가 결항하고 화산재가 대도시를 뒤덮는 자연재해가 수시로 일어난다.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의 삼림에서는 대형 화재가 자주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내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지진이나 화산 활동 등 자연재해를 완벽하게 예방하거나 피할 수는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칠레 재난 대응 체계의 핵심이다.
대형 지진 피해가 잦은 터키는 재난 대책의 역사도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만 제국 당시인 1509년 이스탄불 대지진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나자 가구당 금화 20개를 지급한 것이 문서로 남은 최초의 재난 대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에 들어서는 1944년 세 차례 강진으로 3,959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고 나서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내진 설계 기준을 도입했고 1957년 규모 7.1의 강진 발생 직후에는 이재민 수용 등을 위한 시민 보호법이 제정됐다.
이후 주요 지진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재난 대응과 관련한 법규와 체제를 손질했다.
이렇게 개정을 거듭하던 재난 관리 체제는 `마르마라 대지진`을 계기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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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재난 구조대가 지진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DB |
칠레 "재난이 남긴 교훈을 잊지 마라"
20세기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곳이 칠레다.
1960년 5월 22일 남부 발디비아 지역에서 규모 9.5의 강진이 일어났다. 1,600여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다쳤으며 200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당국은 발디비아 지진을 계기로 강진과 지진 해일(쓰나미) 이후를 대비한 구호 대책을 중심으로 방재 전략을 다시 짰다.
1985년에는 수도 산티아고에서 가까운 중부 발파라이소 지역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났다. 건물들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 당국은 이번에는 건축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건물이 지진의 충격을 버티다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진동에 따라 휘어지도록 설계하도록 했다.
칠레 당국이 수십 년간 재난을 겪으면서 하나씩 쌓아온 대비책은 2010년 대지진 때 위력을 발휘했다.
2010년 2월 27일 규모 8.8의 강진이 발생했다. 강진에 이어진 쓰나미로 500여명이 사망하고 80만명의 이재민이 생겼으며 3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났다.
그러나 지진의 규모를 고려하면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2010년 1월 규모 7.0의 아이티 지진에서는 최대 30만 명, 2008년 5월 규모 8.0의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에서는 8만 7,000명이 넘게 사망했다. 칠레를 강타한 지진의 충격은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보다 800∼1,000배 강한 것이었다.
전문가들과 세계의 주요 언론은 칠레의 지진 대비책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진에 이어 규모 6.0 이상의 여진이 10여 차례 계속됐는데도 무너져 내린 건물이 없었다는 사실은 국제 사회가 칠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재난 겪으며 통합 재난대응체계 완성
칠레에서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국립 재난 관리청(ONEMI)이다.
칠레는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을 경험하고 나서 1965년 비상 방재 기구를 만들었고, 이를 확대 발전시켜 1974년 국립 재난 관리청(ONEMI)을 설치했다. 이미 30여년 전에 국가 재난에 대비한 전문 기구를 만든 것이다.
ONEMI는 외형적으로는 내무ㆍ공공 안전부 산하 기관으로 돼 있으나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ONEMI는 전국에 촘촘하게 구축한 비상연락망을 통해 소방대, 의료지원팀, 민방위대 등이 보내오는 재난 관련 정보를 종합해 이를 국민에게 신속하게 전달한다. 실제로 재난이 발생하면 긴급 구조 활동을 총지휘한다. ONEMI는 모든 재난 상황과 관련해 말 그대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재난 유형별로 전문 기관을 별도로 설치한 것도 칠레 재난 대응 시스템의 특징이다.
ONEMI를 `컨트롤 타워`로 삼되 대형 산불과 화산 활동에 대비해 국립 삼림 관리청(CONAF)과 남부 안데스 화산 관측소(OVDAS)를 두고 있다.
CONAF는 1970년 5월 농업부 산하에 설립됐으며 삼림 관리와 산불 예방 및 구호 활동을 담당한다. OVDAS는 화산 활동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기관이다. 칠레에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3,000여 개의 화산이 있다. 이 가운데 500개 정도는 활화산이고, 40여 개는 언제든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 대응 매뉴얼의 생활화
칠레 국민은 누구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의 행동 요령을 담은 매뉴얼을 갖고 있다.
매뉴얼은 ▲평소의 지진 대비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이 멈춘 이후 등으로 나뉘어 상세한 행동 요령을 안내하고 있다.
평소에는 구급상자와 손전등, 라디오, 건전지, 비상용 식수와 식량을 준비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피할 장소와 가족이나 주민들과 이후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 만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 놓으라고 권고한다.
지진이 일어나면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하며 유리창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고 기둥이나 벽 쪽으로 피해 머리를 보호하라고 알려 준다.
지진이 멈추고 나면 전봇대나 전깃줄, 가로수에서 멀리 떨어지고, 부상자가 있으면 구조대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라디오를 켜 당국의 안내 방송을 들어야 한다고 안내한다.
터키 `마르마라 대지진`… 재난 관리 `경종`
1999년 8월 17일 마르마라해 인접 지역인 코자엘리주(州) 등을 강타한 규모 7.8의 지진은 터키 재난 관리에 경종을 울렸다.
전례없이 45초간 진행된 지진의 희생자 규모는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했다. 사망자가 1만 8,000여명, 부상자 3만여명, 이재민 20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해가 난 지역도 코자엘리를 비롯해 이스탄불, 사카랴, 얄로바, 볼루, 부르사, 에스키세히르 등 7개 주에 이른다.
총리실 산하 국가 개발 기구의 네빈 페이니르지올루 사무총장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건물이 완전히 붕괴된 피해는 10만 9,000건, 부분 파손 피해는 24만 9,000건으로 집계됐다.
학교와 병원, 도로, 교량, 상수도, 전화, 가스 등의 기반 시설 피해가 상당해 60만여명이 집을 떠나야 했으며 이 중 절반은 막사에서 지내야 했다.
이들 지역은 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국내 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어 경제적 피해도 막대했다. 재산 피해액은 90억~130억달러에 달했으며 피해 복구 재원을 마련하고자 `지진세`까지 도입해야 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지진대에 놓여 있음에도 건축 과정에서 불법이 만연했고 당국이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며 건물 안전 관리ㆍ감독만 철저히 했었더라도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는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들이 내진 설계 등 여러 안전 대책 없이 성급히 지어졌고 일부는 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건물이라고 지적했다.
터키 상공회의소는 지진 당시 터키 전체 빌딩 가운데 65%가 불법 건축물이거나 각종 건축 규제를 무시하고 지어진 것들이라고 추산했다.
재난응급관리본부, 컨트롤 타워 위상 강화
이 대지진으로 터키 학계와 시민사회 등을 중심으로 기존 재난 관리 체제가 미흡하고 사후 대책에만 중점을 뒀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며 개편 논의를 거듭한 끝에 2009년 재난 응급 관리 본부(AFAD)가 출범했다.
AFAD는 종전에 3개 부처에 흩어져 유기적 운영이 아쉬웠던 재난 관련 부서를 통합한 조직으로 총리실 직속 기구다. 업무 영역도 예방과 위험 관리 등 재난 발생 이전의 관리 분야를 추가했다.
AFAD의 조직도를 보면 예방, 대응, 복구, 시민 보호, 지진 등의 부서를 둬 재난 발생 전 준비와 위험 관리, 발생 시 대응과 응급 지원, 종료 시 복구와 재건 등 모든 재난 단계별 대응 체계를 갖췄다.
또 AFAD의 상부 위원회로 재난 응급 관리 최고위원회와 재난 응급 조정위원회, 지진 자문 위원회 등을 설치했다.
최고위원회는 부총리가 의장으로 국방부와 내무부, 외교부, 재무부, 교육부, 보건부, 교통 에너지 자원부, 환경 산림부 등의 장관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위원회는 1년에 최소 2회 이상 개최해야 한다.
조정위원회는 정부 기관, 비정부 기구 등의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로 총리실 차관이 위원장을, 관계 부처 차관이 위원을 맡으며 1년에 4회 이상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터키 자연재해 피해의 90% 수준이 지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반영해 설립한 지진 자문 위원회는 민관 합동 기구다. 터키 최고 권위의 지진 연구 기관인 보아지치 대학 칸딜리 지진 연구소가 주축이 됐다.
이들 위원회를 통해 재난 대책 `컨트롤 타워`로서 AFAD의 위상을 과거보다 크게 높이는 동시에 지방 정부의 권한과 비정부 기구(NGO)의 참여도 늘렸다.
지역 단위에서는 AFAD 지역 사무소가 주정부, 적신월사 등과 협력하는 체제를 갖췄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 정부와 NGO에 재난 관리 실무를 맡기는 방식이다.
/연합뉴스=김재순ㆍ김준억 특파원
http://www.changwonilbo.com/news/99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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