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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9/19  창원일보
[안태봉 칼럼]
가야 문화탐방

시인 / 부산사투리보존협회장
우리나라의 지명, 전설, 유래 등을 망라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있다. 이 책의 21~32권까지 경상도가 나와 있는데 도의 연혁, 풍속, 묘사(廟社), 능침(陵寢), 궁궐, 관부, 학교, 토산의 종류 및 효자 효녀의 행장과 성곽, 산청, 누정, 사사(寺社), 역원, 교량의 위치, 명현사적, 시인의 제영(題詠)이 게재돼 있다. 그런데 가야지역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음을 본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부락국가인 마을이 점점 작은 부족국가들을 형성해 소위 말하는 6가야가 됐다.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 함안지역을 중심 세력으로 한 아라가야, 확실하지 않지만 진주 함창 중심으로 고령가야, 또 고령을 중심지로 한 대가야, 성주지방을 중심으로 한 성산가야, 고성지역을 중심 세력으로 한 소가야를 든다.


이 중에서 금관가야의 세력이 가장 뛰어나 다른 5국은 금관가야를 맹주로 삼았다.


그러면 대가야의 건국신화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살펴보자.


1,700여년 전 가야산 깊은 골에 한 여신이 살고 있었는데 정견모주(正見母主)로서 그는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 착한 마음을 지닌 여성으로 하늘에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인간이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십사"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가(夷毗訶)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가야산 중턱 상아덤(일명 가마바위)에 앉아 산신과 감응해 옥동자 둘을 낳았는데 형은 대가야의 이진아시왕(伊珍阿王)이 되고 차남은 금관가야의 수로왕(首露王)이 됐다.


전성기 금관가야의 영역은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합천, 거창, 함양, 산청 등 영남지역과 남원, 장수, 신안, 임실, 구례, 여수, 순천, 광양까지 진출해 이로서 금관가야는 고구려, 신라, 백제와 함께 4국 시대를 열었다. 금관가야를 중심 고분으로 지산동 고분군은 1977년 이래 발굴조사와 정비가 진행돼 지금까지 30여기의 대형 봉토 고분과 무덤 400여 기가 발굴 조사됨으로써 우리의 고대사를 사국시대로 파악하는 인식의 배경이 됐다.


이에 따르면 당시 순장이란 풍습이 있었는데 신분이 높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산사람과 동물을 함께 묻었다. 이는 죽은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계세(繼世)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고구려의 순사(殉死)풍습과 금관가야의 소분발굴을 통해 이를 확인됐고 지산의 고분군은 김해를 둘러싸고 있는 중소형분 700여 기가 밀집돼 가야 최대의 고분군이다.


여기에서 출토된 금동관, 장식품, 금귀걸이, 철제무기류, 마구류, 토기류 등은 예술성과 실용성이 가야국의 문화 우수성과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가야국의 건국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후한의 광무제 때 가락지방의 9간이 무리를 이끌고 구지봉에 올라가 귀가를 부르니 6개의 알이 든 금합자가 붉은 줄에 매달려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를 아도간의 집에 안치해 뒀더니 다음날 6명의 동자가 나오고 10여일 후에는 어른이 돼 3월 보름날에 왕위에 올랐는데 처음으로 나타난 동자를 수로왕이라 부르고 그의 나라가 곧 금관가야이며 나머지 5명은 5가야의 왕이 됐다고 한다.


어쨌든 낙동강 유역의 유적이 보여주는 바 가야의 문화가 곧장 금석병용기(金石竝用期)가 된 것 역시 중국 한대 문화를 일찍 받았음과 가까운 지역에 철이 많이 생산됐음을 든다.


그리고 일본측 기록에는 미마나 즉 임나(任那)의 중심지라 말하고 있으며 위지동이전의 구야한국(狗邪韓國)을 이곳을 말한다고 직시했다. 그리고 고유한 문물 중에 가야금 또한 이곳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본다. 저 유명한 작곡가인 우륵 역시 가야국의 유민이다.


가야읍 쾌빈리의 금곡(琴曲)은 악성 우륵이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한 곳이라 한다.


우리는 3국으로 알았지만 이제부터는 4국으로 칭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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