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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4/02  /김인교·김동출 기자
무역선까지 건조하고 해상무역 주도한 아라가야
그 찬란한 문명의 꽃은 빼어난 미 ‘토기였다’

유네스코등재 앞두고 알리기 본격 가동
군 “등재되면 관람객 획기적 증대” 기대
“군수·공무원·의원 등 인식부터 바꿔야”


‘함안군이 관광지?  현실은 “글쎄요”



 
▲ 토기의 나라, 아라가야

2019년 6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거제-마산 간 국도’ 건설 구간을 발굴 중이던 삼한문화재연구원은 5세기 전반기(서기 400년대 전반) 아라가야 시기의 유물 등의 대량 발굴 소식을 알렸다.

여기서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 시대 수혈(구덩이) 주거지 40기와 가야시대 수혈주거지 15기, 나무덧널무덤(목곽묘) 622기, 돌덧널무덤(석곽묘) 35기, 널무덤(토광묘) 17기, 기타유구 200여기 등이었다.

무려 670기가량의 아라가야 최대 규모의 고분군과 1만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나온 이 현장은 고대 아라가야가 무역선을 건조하고 해상무역을 주도했음을 무려 18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아라가야의 찬란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아라가야는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가야의 국가다”이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아라가야의 왕릉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아라가야 양식 토기의 생산유적인 함안 우거리 토기 가마가 있다”고 소개한다.

아라가야를 설명할 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으라면 바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전에 두고 있는 함안말이산고분과과 아라가야 토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아라가야는 토기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토기 종류 또한 다양하다.  
 

▲ 왜 하필 천제산이었을까

함안에는 토기의 대량생산이 이뤄졌던 각 18개의 토기 요지가 존재한다.
 
18개의 토기 요지에는 모두 4~5세기 대의 아라가야 토기가 제작됐고  승석문단경호(삿자리무늬 짧은목항아리), 고배(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식기의 하나), 통형고배(통형모양의 고배) 등 대표적인 기종이 나왔다.

그런데 왜 18개의 도요지 중 14개가 법수면 천제산 일원에서 발견됐을까.

가마의 입지는 교통로와 연료, 원재료를 잘 구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지난 2021년 발굴된 함안 우거리 토기 또한 낙동강과 합류하는 소하천이 흘러 교통로를 확보한 곳에 있다. 저습지(대평늪과 질랄늪)가 형성된 곳에 위치해 토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얻기 쉬웠던 까닭이다. 

여기다 인근 남강과 하천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한마디로 좋은 재료(흙)를 구하기 수월한 데다 요즘 말로 물류가 보장된 곳이었던 셈이다.

▲ 천제산 우거리 가마터 인근에서는 16기의 가마터가 발견됐다

천제산은 해발 224.9m의 나지막한 산이다. 이 산의 끝자락에 분포한 우거리 가마터 인근에서 발견된 가마터는 현재까지 모두 16곳 정도다. 그래서 학계와 함안군은 이 천제산 일대를 우거리토기가마군(群)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 해 11월에는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능선 사이에서는 질날늪, 대평늪과 같은 강가의 배후 습지가 확인된다. 

이곳에서는 토기가마 4기와 실패한 토기를 폐기하던 구덩이 2곳이 발굴됐다. 

그 안에서 4세기 아라가야의 다양한 토기 조각 수만 점이 출토돼 1600년 전 가야인들의 가마 조업방식과 환경을 생생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또 우거리 토기가마군은 이곳에서 생산된 다량의 토기들이 남강과 낙동강을 통해 영호남의 여러 지역으로 유통됐다.

▲ 오사카 쓰에무라 가마유적 형성에도 영향 미쳤다

이곳에서 생산된 토기들은 생산된 다량의 토기들이 남강, 낙동강을 통해 창원, 부산, 대구 등 영남 각지로 유통됐다. 남강과 낙동강을 더쳐 일본까지도 전래됐다. 

국내는 물론 일본의 대표적 스에키 생산유적인 오사카 쓰에무라 가마유적(陶邑 古窯址群)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학계의 보고서도 나왔는데 이는 가야 토기 문화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미에현 쓰시 로쿠다이유적을 발굴·조사한 호스미 히로마사미에현매장문화재센터 연구원)씨는 발굴·조사 보고서에 이곳에서 발굴된 원통 모양 그릇받침(기대) 등 아라가야식 토기를 ‘함안식토기’라고 일본 학계에 공식적으로 보고했다. 

그는 이들 토기를 ‘도래인’이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 만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도래인이란 주로 5세기에서 6세기 중기에 이르는 기간에 중국대륙 혹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선진적 문물을 일본에 전파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폭넓은 분야에 영향을 줬다.

1500년 전 당시 아라가야인(도래인)들이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 깊숙한 곳까지 그 먼 길을 어떻게 이동했을까.

그는 도래인들이 대마도를 거쳐 시코쿠와 세도나이카이를 경유해 오사카만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로쿠다이 유적에서 함안식 토기와 함께 출토된 많은 목제유물 중 배(고대선박) 조각이 함께 출토된 사실을 확신의 근거로 삼고 있었다.

그는 “로쿠다이 유적은 당시 일본인의 생활유적이지만 함께 발견된 함안식 토기를 통해 외래 선진문물이 여기까지 전파됐음을 알 수 있다”며 “또 도래인이 전파한 선진문물이 당시 이곳 주민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반도의 폼페이’ 아라가야

일부 호사가들은 아라가야를 ‘한반도의 폼페이’라 부른다. KBS 한국방송이 <역사스페셜>에서 ‘한국의 폼페이, 아라가야  1부, 말이산고분군’을 방영하면서이다. 

이 방송은 아라가야를 “한반도 남쪽 낙동강 유역에 존재했던 가야 제국”이라며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달리 중앙집권형 고대국가로 이르지 못한 채 신라에 통합돼 버리고 만다”고 봤다.

그렇게 가야의 역사는 600년이란 시간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 역사에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아라가야는 여러 가야국들로부터 ‘형님의 나라’로 불렸을 정도로 가야를 대표하는 국가였으며 특히 우수한 토기 제작 기술과 제철 기술로 고대 한반도 남부의 발전을 주도했다고 소개한다.  

▲ 함안군 지역민들의 반응은

함안군은 2023년에는 말이산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어떤 이는 말이산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 이후를 걱정하는 이도 많다. “세계문화유산이 되면 뭐하느냐”는 것이다.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가 되면 문화재법 적용에 더욱 더 까다로운 기준이 제시될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함안이 타 지역과 비교해 사대적으로 빼어난 경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분만 보고 가버리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함안군 입장은 약간 다르다. “우리가 준비한 게 많으니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며 지역경제는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만을 내놓고 있다. 

함안군의 오랜 지역 역사지킴이 조희영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회장은 그런 함안군의 입장을 “바램(유네스코 등재)이 이뤄진 후 상당히 큰 군민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 내다봤다. “전제산 일원의 저런 훌륭한 역사적 문화자산을 아직도 제대로 일반관광객들에게 공개 못할 정도인데, 말이산고분군만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제라도 군수부터 공무원까지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31일 함안문화원에서 ‘아라가야토기 생산유적의 가치 향상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기자들에게 낸 보도자료는 ‘성황리에 개최’였다. 과연 성황리에 개최됐을까? 

현장을 둘러본 기자는 아직도 군의회 의장, 도·군의원 등이 아라가야에 갖는 인식은 한참 먼 것처럼 보였다. 이날 현장에 나온 이는 부군수와 도의원 1명, 군의원 1명 정도였다.

군수와 도의원·군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성황리 개최’가 안 됐다고 할 수 있는가는 반문도 존재할 터이지만, 이들에게는 앞장서서 아라가야를 알리고 아라가야토기를 널리 홍보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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