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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소녀 송현이(송현이 복원모습) /사진제공=문화제청 |
소녀, 저승에서까지 주인을 섬겨야 했던 것일까
그녀는 허리가 길고 턱뼈는 짧고 얼굴이 넓고 긴 목을 가진 아직도 앳된 열여섯 소녀였다. 무릎뼈는 바닥에 꿇어 일하느라 다 닳았다. 주인 마님이 죽자 죽어서도 수발들 셈이었을까. 스무살도 채 넘기지 못한 채 이승에서도 모자라 저승에까지 가서라도 주인을 섬기려 했을까. 가야시대, 비련의 주인공, 가야소녀 ‘송현’이가 1500년이 지난 어느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우리 만치 생생하게 보존된 인골의 모습으로-.
지난 2007년 12월쯤,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15호분을 발굴하던 중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당시 발굴작업을 하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무덤 주인과 함께 순장된 2명의 남성, 2명의 여성 인골을 차례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가운데 여인으로 추정되는 인골 1구는 왼쪽 귀에 금제 귀걸이를 한 채 (인골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믿을 수 없을 마치 온전했던 인골은 그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자신의 비운을 1500년 후에라도 보이려 했던 셈이다.
이 인골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무슨 연유로 순장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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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토당시 송현이 인골 /사진제공= 창녕군 |
‘가야 사람’ 복원연구사업 착수
2018년 ‘가야 사람’ 복원연구사업이 시작됐고 결과는 1년만인 2019년 11월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연구에는 다양한 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DNA 추출·성별·친연관계·식생활 규명 분야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이, 법의학적 인골 수습·기록·해부학·인체복원(조형학)은 가톨릭의과대학 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가, 과학적 연대측정은 충청문화재연구원 한국고고과학연구소가 담당했다.
연구결과 인골은 여성으로, 발굴당시 인골로는 신장 135cm정도였는데 복원결과 최종 키는 153.5cm, 순장 당시의 나이는 만 16.03-16.65세 전후로 추정됐다.
인골 앞니의 자르는 면에서 반원형의 마모가 관찰돼 치아를 통한 무언가를 자르는 일을 반복한 것으로 보여졌다. 뒤통수 뼈에 다공성 뼈과다증이 보여 살아생전 빈혈이 있었고, 양쪽 종아리뼈와 정강뼈 뒷면에 종아리의 반복적이고 급격한 운동을 추정해볼 수 있는 반응뼈가 관찰돼 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노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인골에서 추출한 콜라겐의 안정동위원소 분석결과 쌀, 보리, 콩과 같은 곡식과 견과류를 주로 섭취했다는 결과도 나왔다.
중독 또는 질식사로 사망
이 순장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을 통해 분석된 결과 사망시기는 서기420-560년으로 파악됐고, 인골들의 뼈대에서 골절 등의 외상이 보이지 않아 중독 또는 질식사로 사망한 뒤에 순장한 것으로 분석됐다.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유골 1구를 과학적, 입체적으로 분석, 그가 가야시대 소녀였다는 점을 확인한 순간이다. 송현이는 물론 송현동 고분군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애칭이다.
가야소녀 송현이 서울 나들이를 하다
가야소녀 송현이는 지난 2월 서울로 나들이를 한다.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서울에 온 고대소녀, 송현이>
를 통해서다. 이때 복원된 얼굴모습도 일반에 공개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때 많은 관람객들이 몰리면서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로부터 관심세례를 집중받았으니 가야소녀는 무려 1500여 년간이나 켜켜이 쌓아뒀던 한을 조금이나마 풀었을까.
5~6세기 가야연맹 구성…정치체 모습 보여줘
가야 소녀 송현이가 잠들었던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이름해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5~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묘제와 부장품을 통해 신라와 자율적으로 교섭했던 가야 정치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고분들 뒤 정상엔 명산 화왕산의 매혹적인 자태를 보이고 구릉 아래로는 평화로운 창녕의 시가지와 너른 벌판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가히 명당 자리다.
구릉 위 고분의 부드러운 곡선은 눈부시게 빛났던 옛 문명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송현동·교동 고분은 봉분이 남아 있는 것이 120여 기이다.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180여 기까지 합하면 이곳 고분은 300여 기에 이를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있다.
봉토분은 총 115기가 분포해 있는데 축조된 시기에 따라 5세기 고분은 구릉지 능선을 따라 위치하며 6세기 고분은 구릉지의 동쪽 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창녕군 전체에 산재해 있는 가야 고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적게는 500여 기, 많게는 1천500여 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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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사진제공= 창녕군 |
비화가야 옛 모습 그려보며 산책
비사벌이라고 일컬어졌던 비화가야 지역인 창녕에는 송현동 고분군과 교동 고분군을 이은 걷기 길이 있다. ‘송현이 길’이다. 낙동강 동부에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비화가야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송현이 길은 창녕박물관에서 시작해 송현동 고분군∼송현동 마애여래좌상∼진흥왕 척경비(만옥정 공원)∼창녕 석빙고∼창녕 향교∼명덕수변생태공원∼교동 고분군을 거쳐 창녕박물관으로 원점 회귀한다. 거리는 4㎞이지만 문화재와 유적을 얼마나 찬찬히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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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화가야 금동관 /사진제공=창녕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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