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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1/01  창원일보
[현장에서]
살생부라니

최현식/창원일보 편집국 사회부 국장
조선 세조는 조카 단종을 없애야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세조는 단종을 폐위시키기 전 소위 말하는 살생부를 만들어 한 명씩 제거해 나간다. 이 바람에 사육신도 생기고 조정은 피비린내로 들끓었다.
 

정적들을 없애고 난 후 단종은 영월로 귀향가고 끝내는 자객을 보내 후환을 없앤다는 이유로 살해한다.
 

이 살생부와 시중에 나도는 블랙리스트가 무엇이 다른가. 지난 12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놓고 여야의원들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간에 날선 공방이 오고 갔다.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에 조 장관은 "지금까지 9,400여 명의 명단이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기재된 리스트다. 하지만 그 리스트에 없는 분들이 문제가 된 것이 있고 리스트에 있는 분들도 600여 건의 지원금을 받는 예외가 있다"며 그 신빙성에 대해 문제를 삼았고 당신이 직접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적도, 작성하라는 지시를 한 적도 없고, 지금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즉시 사퇴하고 피의자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침을 튀기면서 격앙된 목소리를 높였다.
 

청문회에 나오면 야당 의원들은 무조건 사퇴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안 그래도 나라가 어수선한데 즉시 사퇴는? 어렵지 않겠나.
 

걸핏하면 사퇴, 이 말이 야당 의원들의 전유물이 아닌지 묻고 싶다.
 

"조 장관과 최순실이 잘 아는 사이다"고 말하는 의원이 있었는데 아니면 말고다. 이미 버스는 떠났지만 황망함을 감출 수 없다.
 

이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작성했단다. 이러니 블랙리스트 진실 공방은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블랙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영국의 국왕 찰스 1세가 청교도혁명으로 1649년 처형되자 아들 찰스 2세가 아버지를 죽인 판사를 비롯하여 법정관리인 등을 망라한 58명의 명단을 만들어 손을 보았다 한다. 이게 블랙리스트의 시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58명 중에서 30명을 처형하고 25명을 종신형에 처했다. 왕정복고를 하고 피의 숙청을 했다. 마치 김정은 처럼 말이다. 그의 보복정치는 악순환을 낳았고 급기야는 최악의 군주라는 오명까지 덮어썼다. 그는 명예혁명으로 쫓겨났다.
 

살생부와 블랙리스트나 별 다른 게 없다. 이미 권력에 맛을 들인 이상 달콤한 말에 귀 기울이고 쓴 말이나 달디단 말은 들으면 좋다.
 

중국의 부패 관리가 법정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개구라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자 너무 좋아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최후 변론을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나섰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그런데 늦은 감은 있지만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퇴임 한 달 전에 블랙리스트를 보았다고 말하고 수시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라며 당시 문화교육수석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작성출처로 정무수석실이라고 말하고 구체적인 작성자로 정무수석실 산하조직인 국민소통비서관실을 지목했다.
 

당시 정부수석은 조 장관, 국민소통비서관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일치하는 것인데 조 장관이 모르쇠로 나가면 안 될 일이다.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시국선언 참여자,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지지자 등이 망라되어 있다니 이게 사실이라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없는 것을 하고 있으니 범죄치고는 큰 범죄 행위다.
 

어떤 사람이 지시했고 또 어떻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문화예술계를 흔들고 억압하고 통제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특검은 이 불온한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끝까지 색출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명심보감의 한 문장이 생각이 난다. "총애를 받거든 욕됨을 생각하고, 편안함에 처하거든 위대함을 생각하라"는 말이 내 귓가를 스친다.
 

살생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재가 사멸(死滅)되고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다.
 

블랙리스트가 설사 있더라도 과감히 파헤쳐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게 바른 정부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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