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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8/13  창원일보
[권영수의 여론마당]
일본 군함도(軍艦島)와 강제징용

창원시 참사랑 봉사회 회장
지난 7월 27일 개봉된 영화 군함도(軍艦島)가 10일 만에 관객 500만명을 넘어서고 이달 말경이면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류승완 감독이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해 일제강점기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기대 이상으로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나가사키현 노모반도 서쪽 하시마(단도ㆍ端島)의 별칭이다. 크기는 남북 480mㆍ동서 약 160m 야구장 두 개의 정도로 일본 나카사키항에서 18km 떨어진 곳에 있다.
 

일본은 강점기 시절인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해 인력과 물자를 강제동원할 근거를 마련해 1944년 식민지 조선에 대한 국민징용령(國民徵用令)을 강제로 적용시켰다. 그 결과 조선인을 비롯해 동남아지역의 수백 만명이 강제로 끌려가 노동력과 인권을 수탈당했다.
 

그 당시 필자의 부모님도 나가사키현 탄광 등으로 끌려가 탄광에서 하루에 강냉이 죽 2~3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지하 100m 아래 탄광에서 하루 12시간이나 고된 노동을 해왔다는 얘기다. 몇달 후 배고픔과 노예 생활을 견디다 못해 같은 조선인 십수 명과 목선을 타고 그섬에서 탈출을 해 육지로 건너 왔지만 일본 경비대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그 당시 아버님 또는 다른 분들께 전해들은 것은 지옥의 섬이라고 했던 것을 보면 그섬이 바로 군함도가 아닌가 싶어진다.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 군함도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인 미쯔비시가 1916년에 섭립한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고 했다. 멀리서 보면 바다에 떠 있는 군함처럼 보인다 해 일본어로 하시마 끝에 섬이라고 해 단도(端島)라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곳은 지하 100~150m까지 석탄이 무궁무진하게 매장돼 있어 석탄섬으로 불리어 한때 미쯔비시의 보물창고로 불려졌다. 1945년 일본이 패전 직전까지 섬주민이 5,300여명이 있었고 그 중 강제 징용된 조선인만 약 700~800명이 강제 노동으로 끌려 왔다고 했다.
 

당시 조선인들은 배고픔과 고된 노동에 시달려 그 곳을 지옥의 섬(地獄島)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군함도에서 강제 노동 중인 조선인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122명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아버님을 비롯해 여러사람이 두 번째 탄광에 끌려간 곳이 나가사키현 탄광에서 1년 넘게 강제노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일본에서 탄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 다른나라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기혼ㆍ미혼자들이 탈출하다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국인 등 여성 위안부들도 많이 끌려와 매일같이 많은 일본군인들의 가혹행위에 견디지 못해 탈출하다 잡혀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또한 지하 100m 탄광에서 힘든 노동으로 영양실조 또는 구타로 쓰려져 매일같이 여러구의 시체가 실려 나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군함도 강제징용 등에 대한 글을 쓴 일본의 한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가 `사진기록 지쿠호, 군함도`라는 책을 펴냈다. 조선인 등 아시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강제동원 일본전역의 탄광에서 노예처럼 구타당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참상을 그려낸 것이다.
 

일본이 지난번 군함도를 세계 문화유산 등제를 신청할때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ㆍ필리핀ㆍ대만 등 국제사회가 반발하자 강제징용을 포함한 전체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을 해왔다.
 

그러나 2015년 세계 문화유산 등재 이후 설치한 군함도 역사 안내판에 군함도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설명과 함께 1850년 부터 1910년까지로 연대 표기를 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1944년 조선인 등 강제징용에 대한 것은 빼버렸다. 처음 문화유산 등재 때 강제노동으로 희생된 각국의 많은 노동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 약속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징용으로 많은 희생자가 은폐된 군함도는 세계 문화유산이 아니라 역사왜곡이 조작된 역사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광복절을 맞이해 당시 미쯔비시 군수공장 자리였던 인천 부평공원에서 국내 첫 징용노동자 상(象)이 세워진다.
 

 일제 36년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은 부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ㆍ부산ㆍ경남ㆍ제주 등에서도 일제의 강제징용노동자상(强制徵用勞動者象)의 설치가 추진중이라고 한다.
 

때늦은 감이지만 지금의 평화의 소녀상(少女象)처럼 미국ㆍ중국ㆍ동남아지 지역 등 세계 일부 나라에서도 노동자 상을 건립해 일제 36년 강제 침략과 함께 강제징용의 참혹했던 현실이 후세에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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