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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5/26  창원일보
남자라면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김 명 훈 김해벨라에세이 회원

 

 

 

 

 

 

 

 

 

 

 

김 명 훈 김해벨라에세이 회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H와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애초에 만날 때,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야만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였다면, 몸이 멀어져도 마음은 절박하였을 터, 꾹꾹 눌러 쓴 반듯한 애정이 스며있는 편지를 보내거나, 언제 어느 때 전화를 해야만 서로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설레는 아쉬움들이 서로의 마음을 더 달아오르게 하였을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하는 오락실에서 동료로 만난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우리는 하늘이 맺어준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업무를 마치면 매운맛이 일품이었던 바베큐 집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나지막하게 애정의 밀어를 속삭일 수 있었던 주거의 환경이 우리를 4년 동안의 연인으로 지탱시켜 주었음은 자명하다.
 

H의 숙부의 집 아래 낡은 창고에서 술 취한 척 입을 맞춘 후,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쑥스럽게 손을 흔들며 내일 보자며 웃으며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거처의 거리가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안도였으리라.
 

그런 그녀가 갔다. 아니, 떠났다. 나와의 만남을 반대하는 그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곳으로...
 

H에게 전화가 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맞선을 볼 거라 한다.
 

맞선이라는 의미가 우리 사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서로가 잘 알고 있는 탓에 더는 묻지 않고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하나, 잘 해보라"라고 심드렁하게 한 마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밀양으로 돌아간 후, 사랑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쓴 H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연인들 끼리만 통하는 감정의 기류는 한 번의 통화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고 세 번의 통화로도 뭔가 떨떠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 만큼 감성의 촉이 예민해져 있었다.
 

5월이었고, 한낮이었다. 전화가 왔다. 벨이 울리는 순간, H임을 직감했다.
 

"뭐 해?" "응, 밥 먹으려던 참이다" 숟가락에 뜬 밥알들이 침묵만큼 어색하고 무겁다.
 

"잘 사나?", "그냥 그래", "오빠, 나 없이 어떻게 살아……" H가 울먹인다. "으응……" 왈콱, 느닷없이 터지는 눈물이란….
 

그녀가 울고, 나도 울었다. 이렇게 목 놓아 울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엉엉. 꺽꺽. 쥐똥 냄새가 가득한 창고에서 나누었던 열병 같은 혀들이 삐져나오고, 가늘고 흰 그녀의 손가락들이 봄날 꽃가지처럼 내 뺨을 어루만지고, 눈길이 마주치면 복사꽃처럼 환하게 웃기만 하던 그녀가 단박에 터졌다가 사나운 바람의 발길질에 한순간에 사라지는 꽃잎마냥 저편 하늘로 하늘로 아득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나 같은 건 잊어버리고,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절규하듯이 뱉어낸 안녕의 말들은 왜 그렇게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건지…. 스위치 백 철로(기차가 비탈길을 통과하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지그재그로 반복하는 선로)에서 마지막 괴성을 내지르며 가파른 고갯길을 막 오르려는 기차처럼 우리는 살기 위해 울었고, 헤어지기 위해 울었고, 사랑하기 위해 울었다.
 

사랑한다는 말로 너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더는 너를 붙잡을 수 없는 노랫말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남자는 울어야 한다. 너만 사랑한 것처럼, 다시는 사랑 못할 사람처럼. 후련했을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그녀는 나에게 행복하게 잘 살으라고 하였다. 마지막 헤어지는 애인에게 해 줄 말은 딱히 그 말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 탓에 더 서럽게 울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이십여 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면 서럽다. H의 꿈을 꾼 어느 날은 종일 해몽의 징조에 매달려 과거의 행적을 꼼꼼히 따져보려고 끙끙거리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 전체를 껴안는 일이다. 그 사람과 무엇을 해서 행복해지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이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애절한 슬픔들이 서로 공유되어야만 한다.
 

H와 나는 형태만 있었고 본질은 없었다. 그날의 내 서러운 눈물은 혹독한 바람을 견디지 못한 어린 복사꽃을 위한 헌신이자, 배신이었다고 치자.
 

사랑의 해피엔딩은 없다. 독사과가 목에 걸린 백설공주의 입술에 키스한 사람이 왕자가 아니라 사실은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이었으며,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집어 든 사람이 왕자가 아니고 시중을 드는 하인이었으며,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사람이 기개 넘치는 용사가 아니라 지혜롭기만 한 무일푼의 거지였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남자라면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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