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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동아파트 내부 엘리베이터 공간에 시 한편이 전시돼 있다 |
대한민국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공간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이때 사각의 엘리베이터 공간에선 주민들간 소통의 짧은 만남이 이뤄지지만, 대개 어색한 침묵과 약간의 눈인사에 긴장감마저 흐른다. 간혹 낯선 이가 엘리베이터에 타기라도 할라치면 긴장은 더욱 고조되기 마련.
이런 딱딱하기만 한 공간을 시적(詩的)으로 바꾼 아파트 공동체가 있어 화제다. 바로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위치한 태완노블리안아파트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아라가야 고도 가야읍에 위치한 사연으로 ‘아라동 아파트’로 불리는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사각의 차디찬 공간이지만 내부는 약간 색다르다. 이 아파트 엘레베이트 안에는 시(時)가 흐르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광고판 옆에 시 한 편이 게재되면서부터 딱딱하고 차갑게만 느껴졌던 자그마한 공간은 봄 풍경이 되고 여름, 가을, 겨울 속의 자연 공간이 된다.
이달 5월에는 ‘아지매’들이 봄나들이를 나선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시 한 편으로 그려졌다.
<봄 나들이 나온 아지매들이/ 꽃무리 지어 활짝 웃는다/ 봄 꽃 속에서 사진 속에서/ 다투어 꽃으로 피었다…>
詩 중 ‘아지매’란 ‘아줌마’의 옛 말이라서 반갑고 더 정겹다. 그 아지매들이 <코로나 불루에 갇혀 / 한 삼년 애꿎은 세월에 시르죽었다가 / 팝콘처럼 한꺼번에 활짝 핀 꽃>을 맞았단다.
아지매들은 <자기 웃음에 까무룩 자지러지고...> 그러다가 <가없는 꽃밭이 들썩들썩 왁자지껄>해지다가 <마음 놓고 푸짐한 아지매 꽃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詩 한편이 마치 풍경화처럼 그려지는 모습이 엘레베이트 내부 공간에서 탄생한 셈이다. 어렵지도 않고 편안한 시어(詩語)로 쓰여진 엘리베이터 속 詩 한편이 가져오는 효과는 의외로 예사롭지 않다. 이웃 사람들이 이 아파트를 ‘詩 읽어주는 함안 아라동아파트’로 부르는 이유다.
시를 쓴 시인은 말미에 감상평을 싣는 친절함도 놓치지 않는다.
“지난 3년간 코로나에 가장 고생한 사람은 주부들입니다. 격리를 이유로 가족들이 집에만 갇혀 있었으니 그 사정 챙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제 봄이 되고 방역도 풀려, 끼리끼리 어울려 꽃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벚꽃에 이어 유채꽃, 철쭉꽃 모두 활짝 꽃세상을 만들어 반겨주고 있습니다”라 격려한다.
시를 쓴 이는 이 아파트 거주민인 이상규 시인(경남문인협회 회원·전 함안예총 회장·아라동 노인회장)이다. 그는 “7년여 전 엘리베이터 내부 공간이 너무 삭막해서 시를 한 편씩 걸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게 출발이었다. 그는 1주일에 한편 씩, 어떤 때는 한 달에 한두 편씩의 시를 내부에 게시한다. 그게 올해로 7년 째다.
그렇게 시작된 ‘詩 읽는 마을’이 2016년부터 이어져 올 5월 1일로 무려 163회를 맞았다. 시집 한 권에 대략 70편~80편 정도의 시가 수록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 아파트 주민들이 그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읽은 시는 시집 두어 권쯤은 족히 된 것이다.
이 아파트에 허여주 관리소장이 부임하면서 글귀만 있던 시에 삽화가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시를 음미하게 됐다.
“詩 읽어주는 아파트 소문이 나서 여러 곳에서 와서 보고 가기도 했어요. 부럽다면서... 주민들 입장에서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이 아파트 허 관리소장의 말이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언젠가부터 엘리베이터 내에 붙여진 詩를 다 읽고서는 또 다른 詩를 기다리게 됐다고 한다.
“시가 너무 쉽고요... 우리 아파트 안에 이런 그림 같은 시가 쓰여져 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해요~” 아파트 거주 초등학생 B군의 말이다.
아파트 주민 C씨는 “우리 아파트 주민인 李시인 님이 너무 존경스러워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엘리베이터 시 구절에 눈이 저절로 가서 어느새 우리 모두 반쯤 시인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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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를 연상케 하는 함안노블리안아파트 담장. 5월을 맞아 장미꽃 넝쿨이 제 멋을 한껏 내고있다. |
http://www.changwonilbo.com/news/2878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