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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대가대 교수ㆍ경영학박사ㆍ논설위원ㆍ색소폰니스트ㆍ전/DGB금융그룹 홍콩법인장 CEO) |
◆터져 나온 미수금 사태
고향 창녕 영산농협에서 최근 발생한 미수금 사태는 단순한 금융 부실 사건이 아니다. 조합원과 지역민이 믿고 맡긴 자금을 관리하는 협동조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농심의 신뢰 기반을 송두리째 흔든다. 최근 드러난 자료에 따르면, 마늘 판매 대금 약 270억원이 회수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이는 자본금 23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직면한 것이다. 농협의 핵심 기능은 농민의 자금난을 덜어주고, 안정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왜 이런 기본 원칙이 무너졌을까?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거래와 대출 심사의 전문성과 규정의 허술함이 큰 문제다. 담보 가치나 상환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관계 중심의 `형식적 심사`에 의존하는 관행이 이번 사태의 불씨였다. 일부 중도매인에게는 과도한 외상 거래가 허용되었고, 심지어 변제기일을 반복적으로 연장해주는 관행까지 이어졌다. 결국 미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둘째, 내부 통제의 실패다. 감사 시스템이 사실상 `제 식구 감싸기`로 작동하면서, 대금 회수 과정에서 강력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조합장이 신용업무 담당 상무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내부 책임 회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셋째, 조합원 중심 경영의 한계다. 지역 농협의 특성상 조합원과 임직원 사이의 친분 관계가 강하다. 이런 정(情)의 문화가 `업무상 공정성`을 훼손하며 리스크 관리에 구멍을 만들었다. "서로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심사 절차를 대충 넘기고, 연체에 대해서도 강력한 대응을 미루는 관행이 뿌리 깊은게 아닌가?
◆지역사회 신뢰의 위기
이번 사태는 단순히 농협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의 신뢰 위기로 번지고 있다. 농협은 농민의 경제적 안전판이자, 지역 금융의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270억원의 미수금은 조합 경영을 마비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다. 예ㆍ적금 인출 요구가 늘고, 조합원들은 "우리 돈은 안전한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위기는 단순한 재정 손실을 넘어, 농협의 존재 의미와 지역 공동체 신뢰를 흔든다. 만약 이러한 사태가 반복된다면, 농협 합병이나 외부 구조조정 논의까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조합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안기고, 지역 농업의 자생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다. "어차피 농협이 덮어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부실 거래는 반복된다. 금융기관으로서의 농협 기능이 약화되면, 제2금융권이나 고금리 사금융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신뢰 회복과 구조적 개혁의 길
이제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첫째, 거래 및 대출 심사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담보 확보, 신용도 평가, 상환 능력 분석을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관계 중심이 아닌 데이터 기반 심사 시스템이 절실하다.
둘째, 내부 감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외부 회계법인 감사 의무화를 추진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나 대출은 제3기관의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연체 관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초기 연체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악성 채무자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농협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넷째, 조합원 교육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농협은 `친목단체`가 아니라 `금융기관`이다. 상호 신뢰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규율을 무너뜨리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는 영산농협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녕군의 다른 지역농협과 축협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의 농협 부실은 곧 전체 농협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진다. 내부 관리 부실, 도덕적 해이, 느슨한 심사 관행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당장 손질해야 한다. 영산농협의 사태는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할 것이 아니라, 모든 농협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투명 경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창녕 영산농협의 미수금 사태는 경고등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철저한 제도 개선과 투명 경영이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제2ㆍ제3의 부실 사태는 언제든 재현될 것이다. 신뢰를 지키는 것이 농협의 생존, 그리고 창녕 농업의 미래다. 고향의 좋은 소식들이 종종 그립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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