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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 前 마산중앙중학교 교장 |
침대 머리에 밝은 달이 비치니 땅 위에 서리가 내린 듯.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머리 숙여 고향 그리네.
상전명월광床前明月光하니, 의시지상상疑是地上霜이라. 거두망명월擧頭望明月하고,저두사고향低頭思故鄕이라.
이백李白의 정야사靜夜思로, 고요한 달 밝은 밤에 밝은 달을 쳐다보며 고향을 그리는 시이다.
이 가을, 보름달이 떠오르면 시골 들녘에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정겨운 고향 마을과 수수하고 털털한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창 밖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쌀쌀한 바람 세차게 불어오면 청솔가지로 군불 지핀 방바닥에서 등을 지지던 그 때가 더욱 그리워진다.
아침이면 집앞 버드나무 위에서 반가운 손님이 올 것처럼 지저귀던 까치 울음 소리, `음메에` 하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울음 소리도 듣고 싶어진다 무논에 물을 빼기 위해 흙을 뒤집으면 살이 꽉찬 누런 미꾸라지가 꼬리를 흔들며 발버둥질을 친다. 순식간에 한 바가지로 가득 담아지면 배가 불러온다. 이 날 저녁은 미꾸라지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몸 보신으로 며칠 동안은 활기가 넘쳐난다.
이렇게 고향 이야기에 마음을 붙이면, 자잘한 추억과 옛 이야기 장면 속으로 빠져들어 세상 천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다.
그런 이유인지는 모르나 반백의 나이에 들어서니, 순수한 삶의 모습이 남아있는 고향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들은 모임 분위기를 그르치는 것이 없고,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을 조언해주고 마음 꽁하게 지닌 것도 없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 양보와 배려가 몸에 배어있다.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면 신기하기도 하고, 온갖 잡동사니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소 꼴 먹이고, 냇가에서 멱 감고 물고기 잡던 이야기, 수박 참외 서리 이야기, 이웃 마을 처녀와의 연애 사건 등은 언제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헐벗고 굶주림, 그리고 농사일이 싫어 일찍이 생활 전선에 뛰어든 친구의 인생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처럼 감동을 주고 흥미를 일으킨다.
감정과 영혼이 있는 정겨움, 애틋함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곁에 있으니 만남은 늘 기다려진다.
필자가 살고 있는 창원은 70년대 산업공단 조성으로 인해 마을과 논과 밭들이 다 편입되어, 옹기종기 살던 모습과 열심히 땀 흘리며 농사짓던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은 세월 앞에 보이지 않고, 몇몇 친구들만 남아 옛 정을 나누고 있다.
그래서 사라진 마을마다 고향 삶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도로변이나 회사 모퉁이에 유적비를 세워 향수를 달래곤 한다.
중학교 동창인 친구는 지난 여름, 그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창원 전 지역을 답사하며 유적비에 담긴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장한 일을 하기도 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애정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어 참으로 고맙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60여 호밖에 되지 않은 우리 작은 마을에도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관심으로 유적비를 세워 고향의 흔적을 기리고 있다.
이 곳을 지날 때면 고향의 사람들과 정든 집, 정든 골목, 아름다운 산천을 보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며 가슴 속의 시름도 달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잡초 밭으로 변해 외롭게 서 있는 유적지, 이끼가 끼고 곰팡이가 서려 글귀를 알아볼 수가 없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오늘은 옛 고향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난 듯, 유적비에 묵은 때를 닦아내고 새겨진 글귀를 찬찬히 한번 읽어본다.
"성산마을 옛터!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조상들이 일구어온 텃밭, 야철지에 정을 빚어 구워내고 패총에 있고 없던 정도 쌓아가며, 대대손손 뿌리내릴 만고의 고향땅, 불모산 계곡 하늘빛 닮아 흐르는 물은 산태방구에서 곱디고움 자랑하고는 창원의 넓은 들판을 휘돌아 남천은 흘렀다. 성산은 산태방구와 야철지를 업은 새터, 고인돌 의젓하기만 한 우깍단(마을), 들판의 후덕스러운 아래깍단에 육십여 가구 모여 앉아 인정만은 만석萬石이라 순박하게 살아왔다. 거대한 기계소리 울리며 공단이 탄생하던 그날, 정든 고향 등지야 하는 이주민의 가슴에 맺힌 한恨 오랜 세월 삭히고 삭혀야만 했다.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 오순도순 즐겁기만 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옛 성산 사람들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이 땅에 그날의 한恨 승화시키고자 유적비를 남긴다. 2006년 6월 4일 성산 향우회"
우리 마을의 찬란한 유산 성산패총과 고인돌의 역사성은 고향의 자긍심이고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시골 마을은 평화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필자의 고향 마을은 유달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한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무대였고, 가히 절경이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던 뒷동산, 온종일 빨가벗고 물장구를 치며 멱감고 놀던 남천南川,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꿈을 키우던 길다랗게 누운 바위가 불현듯 눈 앞에 아른거린다.
역사의 고향, 그리고 거룩한 고향은 영원히 내 곁에 남아 나를 다시 일으키고 고달픈 마음을 다독이게 해줄 것이다.
휘영청 달 밝은 밤 마당가에서 귀뚜라미가 처량히 울고 있다.
청순한 저 가을 하늘,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며 마음 속 고향 마을을 천천히 걸어가 본다어느 듯 마음이 잔잔해진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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