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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대구가톨릭대 창업경영학과 교수 / 논설위원 / Saxophonist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국정이나 중차대한 운영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고사성어가 만기친람(萬機親覽)이다. `수많은 국정의 기무를 임금이 친히 살핀다`는 뜻이다. 중국 고대 제왕 정치에서 성실한 군주의 덕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진ㆍ한 시대 이후 황제가 상주문과 조서를 직접 열람하고 결재하는 친정(親政)은 책임과 근면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통치자의 자세를 칭송한 말이었다.
만기친람은 위기의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 관료 조직이 안일해지거나 부처 간 이해가 충돌할 때, 최고 책임자의 직접 점검과 결단은 국정의 속도를 끌어올린다. 책임을 아래로 미루지 않고 최종 판단을 스스로 떠안는 태도는 국민에게 신뢰를 준다. 역사적으로도 개혁의 출발점에는 지도자의 강력한 친정이 있었다. 이때의 만기친람은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책임의 집중이었다.
그러나 고사성어에는 늘 경계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모든 일을 친히 살피는 통치가 일상화되면 조직은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잃는다. 보고는 요약되고, 결정은 상향 의존으로 굳어진다. 중간 책임자는 책임을 회피하고, 실무의 전문성은 위축된다. 지도자는 사소한 사안에 발이 묶여 정작 국가의 큰 방향을 설계할 시간과 에너지를 잃는다. 만기친람이 미덕에서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현대 국정은 고대 제왕의 통치 환경과는 차원이 다르다.경제ㆍ안보ㆍ복지ㆍ과학기술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에서 한 사람의 직접 관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오늘날 지도자의 역할은 모든 결정을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고, 권한을 위임하되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데 있다. 만기친람은 이제 `모든 것을 움켜쥠`이 아니라 `제도를 설계하는 리더십`으로 재해석돼야 한다.
그래서 만기친람에는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 하나는 결단의 날개다. 위기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최종 책임을 감당하는 용기다. 다른 하나는 위임의 날개다. 전문가에게 권한을 맡기고 성과와 실패를 제도로 관리하는 신뢰다. 결단만 있으면 독주가 되고, 위임만 있으면 방임이 된다.
만기친람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지도자의 성실함은 미덕이지만, 그것이 곧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고사성어는 `친히 살피되, 혼자 떠맡지 말라`는 경고까지 함께 담고 있다. 모든 일을 직접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모두가 제대로 일하도록 만드는 지도자. 오롯이 두 날개를 갖춘 만기친람만이 국가를 안정적으로 비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http://www.changwonilbo.com/news/328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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