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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11/25  창원일보
가을을 보내며
손영학 동명대 펀 스피치 선임교수

  만추(晩秋)! 낙엽이 지고 있다. 올 가을의 단풍은 유난히도 아름답게 물들어 우리의 마음을 온통 붉고 노랗게 채색하고 정든 가지를 떠나고 있다. 봄이 설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모진 추위, 찬바람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겨울을 인내한 꽃들이 일제히 아우성치며 앞 다투어 피어나는 봄은 새롭게 전개될 세상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가을은 봄의 설렘과 여름의 열정을 뒤로 하고 흘러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며칠 전,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왔다. 전주에 살고 있는 군대 후배 이병천 시인을 꼭 33년 만에 만났었다. 그의 표현대로 `도깨비 여울 건너듯`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이지만 우리는 밤새 낡은 추억의 서랍장에 쌓여 있던 옛 이야기들을 토해내며 정을 나누었다.

 

아주 먼 훗날도 지금처럼 우리는/ 나눌 이야기기 있을까요./ 이미 지나친 곳의 바람은 또 나를 앞지르고/ 빈 계절을 이렇게 마른기침으로 가는데/ 훗날에 훗날에 물 얕은 이 자리에서/ 그 물은 혼자 가다 무슨 이야기를 건져 낼까요./ 귀를 세우면 와 닿는 목쉰 음성/ 밤새 당신이 얻은 뜻/ 혼자 받는 어둠으로는 눈멀어 돌에 채이고/ 혀조차 한숨으로 말라버리고/ 네 숨소리를 곁에 두고 싶다./ 숲을 지나 양지에 서면 네 웃음이 짙어지듯/ 아주 먼 훗날도 지금처럼 우리는/ 나눌 이야기가 있을까요./ - 이병천 - <아주 먼 훗날도>

 

이 시는 군 시절 이병천이 나의 노트에 적어준 시였다. 이 시를 암송하자 이병천이 웃으며 말했다. "형, 참 별걸 다 기억하고 있네" 깊은 밤 창가에는 노란 은행잎이 지고 시간은 가을바람에 실려 또 하나의 추억을 잉태시켰다. 알록달록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서늘한 바람에 화려하면서도 처연(凄然)하게 떨어지는 낙엽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흘러간 세월들은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낙엽은 떨어져 세월 속에 썩어간다. 생선이 썩을 때는 코를 들 수 없는 악취가 풍기고 병균이 득실거리지만 낙엽이 썩을 때는 고운 향기가 풍긴다. 떨어진 낙엽은 썩어가지만 이듬해 봄이 오면 또다시 새 잎이 돋게 하고 꽃을 피우는 나무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도시의 낙엽들은 안쓰럽다. 빗물 한 방울 스며들 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낙엽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산한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방황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실향민의 눈물 같기도 하고 사랑을 잃은 사람의 슬픈 발걸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을은 비움의 계절이다. 푸른 여름을 노래하던 나뭇가지가 잎을 내려놓듯 이 가을엔 무거운 짐을 살포시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떨쳐버리고 깊은 자아 성찰과 함께  참회록을 써야 한다.

 

지나친 욕심이 나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나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이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적은 없는가?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얻는 것이거늘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하고 온갖 불평, 불만, 감정, 시기와 질투, 욕망에 사로잡혀 참 평화를 상실하고 있지는 않는가?  

 

가을은 별리(別離)의 계절이다. 꽃이 지고, 낙엽이 지고, 우리의 인생도 흘러간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요,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도 낙엽처럼 언젠가는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모든 욕심과 근심도, 푸른 날의 열정과 잠 못 이루게 하던 번뇌도 조용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한없이 축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가련한 낙엽인 것을…… 낙엽이 지고 있다. 잘 가라, 가을! 눈물이 뒹굴고 있다. 잘 가라, 그리움이여! 낙엽은 지고 가을은 저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쓸쓸히 가을을 보내지만 이듬해 봄, 또 다시 파릇하게 돋아날 연초록 새 잎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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