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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
여성해방의식은 여성에게 `자주적인 인간`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였다.
여기서 `자주`란 말은 다분히 남성과 남성위주를 두고 하는 말로 남성에게 예속되지 않음을 뜻한다.
남성에게 예속되기는 커녕 남성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는 여성들이 있다. 그들을 일컬어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 한다.
불어인 이 말은 `운명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남성을 유혹하여 고통이나 죽음까지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여인을 말한다.
남성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과 도도하고 강력한 흡인력에 휘말려 파국을 맞게 하는 여인이다. 얼마전 자신도 파멸에 이르게 되는 여인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예전에 가짜 박사 학위가 빌미가 되어 어떤 고위층 인사와 온갖 염문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가 범법자가 되어 결국 두 사람 다 감옥 신세를 지게 된 사건의 주인공 모 여교수와 그 고위층 인사의 파멸은 일종의 `팜므 파탈` 유형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런 팜므 파탈 형 여성은 현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의 여인들 중에 그런 팜므 파탈의 원형이 된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대로마 제국의 최고 지배자 둘을 유혹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였지만 종내는 연인도, 자신도 파멸에 이르렀다.
그녀는 아름다운 용모과 우아한 자태, 천사 같은 목소리, 그리고 왕성한 성욕 등 팜므 파탈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두루 갖춘 여인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지도 혹은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는 유명한 말이 있을 정도의 여인이 아닌가.
클레오파트라는 일생동안 줄리어스 시저와 마크 앤토니, 대로마제국의 지배자인 두 영웅에게 차례로 팜므 파탈이 된다.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유배상태에 있던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침공한 시저의 힘을 빌려 왕권을 되찾는다. 그녀는 시저와의 첫 만남부터 팜므 파탈 다운 기상천외한 면모를 드러낸다.
팜므 파탈이 될 수 있는 여인은 남성을 흡입하는 미적(美的) 마력이 갖추어져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이런 모습은 여러 곳에 나타난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 여왕의 위엄을 갖춘 여자, 여걸다운 여자이면서 동시에 기가 센 여자, 흥분 잘하는 여자, 가학적인 여자, 성실치 못한 여자, 겁 많은 여자 등으로 셰익스피어의 극에 그려지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는 아주 멋진 연인인가 아니면 단지 관능적 욕망에 사로잡힌 음탕한 남녀일 뿐인가?
두 연인은 관능적 쾌락이라는 면으로 볼 때 양쪽 다를 경험한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는 결국 사그라지지 않는 갈망을 지닌 팜므 파탈적 여왕에 대한 열렬한 사랑 때문에 파멸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교활한 역사적 정치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셰익스피어가 그리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라는 팜므 파탈적인 인물은 그렇게 결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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