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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4/16  창원일보
도도새<66> 3부 - 진실과 선
한 민

 

귀국 비행기 내.


 

여유로운 현중과 심각한 표정의 민채가 대비되었다.


민채는 현중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갈회장 부인이 한국인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중국이름을 썼기 때문에 이지현인 건 몰랐어."


"납치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게 사실이야?"


"저들의 목적이 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모르는 척 한 건 사실이야. 기습이 실패하면 다소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한 번은 부딪혀야 한다고 판단했어. 저들이 우리를 얕보지 않도록 우리 팀의 위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 그리고 우리 대원들도 실전 경험을 필요로 했고."


"진우는 그녀가 파라구아이 간다고 했었어."


민채는 여전히 심한 두통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괴로워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하얀 뭉게구름 위는 눈이 부시게 밝고 깨끗하였다. 현중은 민채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지난 번 네가 말한 파라구아이 첫사랑이 지현씨구나. 세상 참 좁군. 납치 계획에 대하여 미리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미안해. 그리고 어제 왕기자에게 들은 이야기야. 왕기자의 말로는 갈회장이 이지현에 대한 애정 표현이 각별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유명했다더군. 그리고 이지현은 선교를 위해서 갈회장의 힘을 필요로 했고 갈회장의 도움을 전제로 결혼했지. 결론적으로 갈회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삼합회와 흑사회를 함께 끌고 가기에 종교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그 후로 비교적 온건한 노선을 걸었고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마약류의 취급을 서서히 줄여 나갔어. 그래서 북한이 갈회장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야. 갈회장은 그의 아내의 조언으로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 나를 납치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직도 조폭의 기질이 남아있다는 방증이긴 하지만 그는 젊고 야망이 크고 경영마인드를 가진 인물이지. 지현씨는 네게 결혼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파라구아이로 간다고 했을 거야."


"그렇다 치고, 내가 이렇게 위험한 일에 동행한 이유는 뭐야?"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그게 뭔데."


"한 가지는 네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이야. 중국 현지인들의 도움을 얻으려면 돈 이상으로 필요한 게 명분이야. 저들이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더 좋아하는 건 의협심이야. 더군다나 갈회장같은 거물을 상대하려면 중국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 해.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중국에 온다는 것 자체로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협조를 구할 수 있지."


"두 번 째는?"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어. 지난번 도도새 얘기할 때 일부 언급했었는데 기억나? 내가 일군 재산이고 나의 회사라 할지라도 친구이기 때문에 중요한 자리를 맡긴다면 조직을 통제하기 힘들어. 그래서 명분 만들기가 필요했어."


"의논도 없이?"


"미안하다고 했잖아. 지금의 상황을 봐! 모든 게 계획대로, 아니 계획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었잖아! 너를 위한 계획을 말해 줘?"


"뭔데?"


"현민건설"


"현민건설?"


"그래 네 이름의 민과 내 이름의 현을 합친 이름이야. 현민건설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해저터널건설 관련한 SOC 건설에 참여할 거야. 하동 일대에 디즈니랜드 버금가는 놀이동산도 만들 예정이고. 문정헌이라는 사람이 있어. 군에 있을 때 만난 사람인데 현 경남지사와 친구야. 너랑 함께 일할 사람인데, 좋은 관계가 될 거야."


"그럼 현민엔터테인먼트도 그런 의미였어?"


"물론이지. 도도새의 둥지로 가는 길목."


민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중이 말하면 현실이 된다.`


민채는 다시 물었다.


"이지현은 갈홍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결혼한 거야?"


"그렇지 않다고 들었어. 이지현은 한국 기독교의 중국 선교 역사상 기록할 만한 업적을 일구었어. 그러면서도 베이징 대학에서 항상 장학금을 받고 다녔지. 그런데 중국에서 기독교는 반사회단체 反社會團體 에 준하기 때문에 점조직으로 활동해야 하는데 같은 대학을 다니던 갈 홍하가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 갈홍하는 결혼 직전까지 철저히 신분을 속였어. 덕분에 이지현은 갈홍하를 재력과 권력을 갖춘 집안의 외동아들 정도로만 생각했지. 베이징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만들고 이지현을 교수로 임용하게 한 것도 갈홍하야. 갈홍하가 이지현에게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구실을 만든 거지. 최근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앙적인 열정이 학문적인 열정으로 전이 되면서 강의와 서적 집필에 열을 올리고 있어. 갈홍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더 있어. 전부 정치적인 결합이지. 중국 본토에 흑사회의 직전 보스의 딸과 대만의 재계 순위 일번으로 꼽히는 유청쭌의 딸이 그의 아내야. 중국은 아직도 화해와 타협의 개념으로 여자를 활용하는 나라야. 물론 관계가 깨지면 폐기 처분되지만, 갈홍하는 그 중에서 이지현 만큼은 정치적이지도, 정치적일 필요도 없는 순수한 여인으로 각별히 아끼고 사랑한다는군."


민채가 현중을 가만히 지켜본다. 현중은 미소 지으며 민채를 향해 손을 펴서 들어 올리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10여년 전 교실에서의 장면 그대로였다. 민채가 현중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너는 도도새에 그렇게 집착하냐? 모자라는 새라면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던 현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도새는 사람이 붙인 이름이야. 도도새 자신은 정작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도도새가 다른 게 뭐야. 인간의 의지로 멸종시켜 놓고 인간의 생각으로 도도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게지. 세상에는 수많은 도도사람이 존재 해. 글자 그대로 법이 필요 없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인간이 역시 존재한다는 게 불행과 갈등의 시작이겠지. 그 인간들은 법 없이도 사는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어리석다고 말해. 무방비상태의 도도새 보다는 아낌없이 주면서 자기를 지킬 수 있으면 비단 위의 꽃송이 금상첨화錦上添花 로소이다."


"펭귄과 도도새를 비교하는 걸 들었어. 생존과 멸종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날지 못하는 새 중에서 펭귄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존재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살아남았고 도도새는 천연의 안식처에서 안주하다가 멸종을 자초했다고."


"그 역시 인간의 논리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먼저 발견한 자가 차지한 거지. 펭귄을 구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해. 인간으로서는 펭귄을 치켜세우면서 스스로 체면을 세우는 셈이지. 모든 역사가 지배자의 관점에서 기록되는 것처럼 생태계의 지배자인 인간의 관점에서 기록되고 퍼 나르기 시작하면 그게 고정관념이 되는 거야. 그러나 그런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 상식의 범주 안에서 행복한 사회, 그게 바로 이상향이 아닐까. 실망스럽게도 말은 좋지만 세상은 그러한 것을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 찬 전쟁터야. 어쩌면 그렇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 다른 불행의 시작인 것 같아 불만이야."


현중은 말하는 것을 멈추고 민채에게 바깥을 보라는 눈짓을 했다.


민채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가득히 하얀 구름 위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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