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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4/26  창원일보
도도새<73> 3부-진실과 선
한 민

 

내륙과 제주를 잇는 문제도 거액의 사업비 때문에 덩달아 묻혀버렸다. 박필영 교수는 한국을 움직이는 10인에 이름이 올려졌다. 권검사장은 예정대로 검찰청장에 올랐다. 일 년 전에 사표를 낸 송재길은 본격적으로 IT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가 개발한 인터넷 정보수집 프로그램과 초정밀 소형 도청 장비 등은 국정원에서 적극 채용되었다. 송재길의 사표수리 시기와 비슷한 즈음에 유정학이 복직되었다. 민철은 믿었던 송재길이 사표를 내자 충격을 받고 장고를 거듭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로 마음먹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도치는 특공경호대 교관으로 맹위를 떨쳤고 조일규와 김종배는 각각 대전의 보스와 인천의 씨사이드클럽을 관리했다. 세노야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고 민철에게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되었다. 현찬은 미나가 둘째를 가지자 세광병원의 행정원장이 되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정병구는 동해 바닷가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횟집을 운영했다. 궁금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쳤느냐고 물으면`형 말을 안 들어서`라고 대답했다.


우종하는 경호대장에 올랐고 박대철은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이었는데 모범수로 분류되어 청송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재활 훈련을 감독하고 있고 다음 해 광복절 특사로 석방될 예정이었다. 광식은 여전히 신촌 힐사이드클럽을 이끌어가고 있었는데 상권이 홍대 앞으로 이동 중이라 최근에 신경질이 많이 늘었다. 프리타임의 우사장은 발 빠르게 홍대 앞에 퓨젼 바를 차려 대박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민채는 현민건설의 경영을 맡아달라는 현중의 제의를 정중하게 사양하고 중견 건설회사에 경력사원으로 들어갔다. 은하는 복직하고 아들, 현은 어느덧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왔는데 민채의 사무실로 예기치 않은 지현의 편지가 왔다.

 

지현의 편지는 유치환의 시구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겨울이구나.

 

감기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 잘하리라 믿는다.

 

네 색시를 중국에서 보고 싶었는데.....

 

이제 중국에서 소임을 다한 것 같다. 중국을 떠나려고 해.


홍하씨와는 이미 오래 전에 약조한 바가 있어서 동의를 구했고.

 

이곳에서 너를 처음 봤을 때 네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가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었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너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 대견했단다.  

 

민채야.

 

마지막으로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이제 주님 곁으로 돌아와.

 

내가 너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면 주님은 피 눈물로 기도했어.

 

주님은 이미 오래 전 네가 다시 돌아오길 광야에서 40일간을 금식하며 기도하신 분이야.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너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지. 건강하고, 모든 일들이 모두 주안에서 형통하길 기도할게.
2009. 12. 19.

 

사랑하였기에 진정 행복하였네라  - 지현

 

민채가 지현의 편지가 유언장인 것을 알게 된 것은 겨울이 지나서였다. 긴 겨울이 끝날 무렵 민채는 현중의 초청으로 중국을 찾았다. 현중은 왕진향과 매우 다정했고 잘 어울렸다. 갈홍하는 합법적인 사업으로 조직의 색깔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민채는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현중이 송재길과 이미 아는 사이였다는 것과 송재길의 아버지가 친일파였다는 것이었다. 송재길의 큰 형은 법조계에서 유명한 인물로서 형제 중 막내였던 그와는 나이 차가 꽤 많이 났다. 그의 큰 형이 부친의 몰수 재산 환수 소송 이후 그의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송재길이 가출하면서부터 고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작 그 이야기를 듣고 민채가 떠올린 것은 그의 형이 송재길의 사표 제출 이후 가슴앓이를 심하게 하던 장면들이었다. 민채에게 더 놀란 일이 벌어진 것은 저장성의 항주에서였다. 항주에는 갈홍하의 별장이 있어서 그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던 민채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있는 현중과 갈홍하 사이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갈홍하는 현중과의 친분과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민채는 그 이유를 그의 별장 꼭대기 층에 위치한 옥탑 방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옥탑 방은 가족 납골당이었고 거기에 안치된 영정 사진은 이지현이었다. 민채는 그녀의 편지가 마지막 작별 인사였음을 깨닫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갈홍하는 눈물 흘리는 민채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민채씨에게 알리지 말라했는데 어차피 알게 될 거고, 미리 아셔야 할 듯해서......"

 

민채는 그녀가 죽음 직전에 그를 생각하면서 힘들게 한 자, 한 자를 써내려갔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세월이 흘러 민채는 공식석상에서 송재길과 우연히 만났다. 민채는 지극한 그의 환대에 다소 거부감이 없지 않았지만 식이 끝나고 자리를 함께 하자는 그의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취기가 오른 송재길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위원, 강검사는 정말 멋진 친구요, 아참, 이젠 강변호사지. 상부 上部 의 부조리를 마지막까지 파고들고자 했지. 하지만 임꺽정과 홍길동이 민초 民草 의 희망이 된 것은 법을 넘어서는 정의와 양심 때문이오. 연회장은 개인적으로 형님의 친구요. 형님 얘기는 밝히지 못함을 양해하시오. 각설하고, 연회장님과 우연히 정보수집 기술에 대해 얘기하다가 자금은 얼마든지 댈 테니 기술 개발에 전념하라고 했어요. 그 당시 연회장님께서 대동한 친구가 바로 이현중 회장이오. 제안에 대한 수락 조건으로 실무 경험이 필요하다니까 연회장이 그 자리에서 바로 권검사장에게 부탁합디다. 국정원장과 각별한 사이였던 권검사장이 IT 부문 전문가의 특별채용의 필요성을 국정원장에게 설명하자 시기적절하게 국정원의 목표가 사이버팀 강화에 있었던 터라 쉽게 승인이 난 거요. 수차례 형식적인 거절을 한 것은 국정원 내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사전에 조율된 바였소. 덕분에 실무경험을 토대로 초박형 도청장치와 인터넷상의 전송신호를 문서화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었고 이를 활용한 정보 수집 프로그램이 빛을 보게 된 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실제로 시뮬레이션한 사람이 바로 이회장었소."


"형이 송차장님께 많이 의지하고 말씀하신 프로그램을 기다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재길은 눈이 풀린 채로 민채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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