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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6/01  창원일보
[권우상 칼럼]
실연(失戀) 때문에 양말기계 발명한 남자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영국 산업계의 저명한 창업자 중에서 양말 편직기의 발명가 `월리엄 리(williaam lee)`와 보빈 레이스 편직기 발명가 `존 히스코트(john heathcoat)`도 훌륭한 기계기술과 끈기를 가진 사람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노팅엄과 그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 엄청난 일자리가 제공됐다. 양말 편직기를 발명하게 된 정황에 대해서는 상반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지만 발명가가 `월리엄 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1563년 노팅엄에서 12m 가량 떨어진 우드보로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규모 자작농의 장남이었다는 말도 있고 어린시절 빈곤에 시달려야 했던 가난한 학자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는 1579년 5월 케임브리지대학교 그리스도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가 세인트존스대학으로 옮겨 1583년경 학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양말 편직기를 발명할 당시 `월리엄 리`는 노팅엄 부근 캘버턴에서 부목사로 목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편직기 발명의 기원이 실연(失戀)이었다고 한다.
 

`월리엄 리`는 그 마을의 젊은 처녀를 깊이 사랑하게 됐으나 처녀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집으로 찾아가도 그녀는 평소 습관대로 손뜨개질로 양말 짜는 일을 계속하면서 학생들에게 손뜨개질로 양말 짜는 법을 가르쳐주는 데만 열중할 뿐 `월리엄 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찮은 일로 `월리엄 리`의 가슴속에는 손뜨개질을 혐오하는 마음이 싹트게 됐고 처녀가 손뜨개질로 돈을 벌지 못하도록 그 일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겠다고 결심했다.
 

`월리엄 리`는 3년동안 발명에 열중,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매달렸다. 성공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부목사 직을 사임하고 기계편직 기술개발에 전념 했다. 이는 `헨슨(henson)`이라는 양말 편직공이 전한 이야기라고 한다.
 

벽촌에 살고 있던 `월리엄 리`가 실연(失戀) 때문에 양말기계를 고안함으로써 여자 한 명이 손가락으로 뜨개 바늘 세 개를 잡고 고리에 실을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과정을 기계로 멋지고 빠르게 짜는 과정으로 발전시켜 놓은 것을 실로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으며 기계 발명의 역사상 이와 견줄만한 혁명적인 발명은 없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손뜨개질 조차 아직 걸음마 단계였고 생산을 위한 기계를 고안하는 일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월리엄 리`의 업적은 더욱 위대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기계 부품을 손수 만들었고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연장이나 재료도 충분하지 않았고 그를 도와줄 숙련공 조차 없었다. 그는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성공해 3년을 고생한 끝에 마침내 양말 짜는 데 적합한 기계를 완성하게 됐다. 그리고 후원을 받기 위해 앨리자베스 여왕을 찾아 갔으나 거부당했다. 여왕은 손뜨개질에 종사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서 기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리엄 리`는 후원자를 구할 수 없고 멸시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1605년 동생과 7명의 직공과 함께 기계를 가지고 프랑스로 이주해 정중한 환대를 받으며 루앙에 정착해 기계를 9대 설치하고 양말 공장을 대규모 운영했다. 인근에 있는 셔우드 지역에서 기르는 양털에서 가장 긴 섬유를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입지조건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전쟁이 나는 등 불행이 닥치면서 `월리엄 리`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은 기계 2만대를 프랑스에 남겨 둔 채 프랑스를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 노팅셔로 돌아온 `월리엄 리` 동생은 애슈턴이라는 사람과 손을 잡았다. 애슈턴은 `월리엄 리`가 영국을 떠나기 전에 그로부터 기계 편직기 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직공들과 함께 토로턴에 양말 생산을 시작해 성공했다. 그리고 기계는 더욱 발전해 오늘날의 최첨단 기술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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