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즐겨찾기  l  시작페이지    l  2019.9.22 (일)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http://www.changwonilbo.com/news/25193
발행일: 2011/06/09  창원일보
사랑, 그 어설픈 정리들
김 명 훈 김해벨라에세이 회원

 

얼마 전,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우연하게 들었는데,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에 묻혀 있다는 표범처럼 해묵은 청춘의 감성이 발끝부터 밀려 올라와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잠자코 21세기가 나를 원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잘살다가도 누군가 왜 사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게 내가 살아왔던 궁색한 내력이라 괜히 먼 산을 바라보며 "인생은 산꼭대기에 걸려 흩어지는 구름 같은 것"이라고 말마따나 뜬구름 잡는 소리만 저절로 나오는 통에 뜬금없는 질문에 뜬금없는 답변이라고 싱겁게 웃고는 차마 내 입으로 도저히 밝힐 수 없는 비밀이라도 있는 양, 하하 웃고는 그러는 당신은 왜 사냐고 물으니 상대도 우물쭈물하기는 마찬가지다.
 

설혹, 당신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스님의 선답을 내놓았더라면 차라리 멋진 말이 될 테지만, 유행처럼 지나가는 세상의 오래된 화두가 때가 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21세기가 나를 원하는 이유가 없더라도 나는 21세기를 살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차를 몰아가지만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라는 노랫말이 가슴의 빙벽을 쨍하고 울려치면, 결코 젊지 않은 삶의 주름살 속에서 웃고 울었던 애인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재방송 된다.
 

얼음은 따사로운 봄볕에만 풀리는 게 아니라, 쓸쓸한 가을볕에도 풀리는 것, 사랑은 봄날에 흩어지는 낙엽이어라. 가슴에 한줄기 물이 흐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옆집에 살던 4학년 OO와 소꿉놀이를 빙자한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어른들이 없는 저녁이면 OO의 남동생과 내 여동생을 남매지간으로 맺어주곤 나와 OO는 어른행세를 하며, 어른처럼 말을 하고, 어른처럼 뽀뽀했고, 어른처럼 잠을 잤다.
 

한 이불 속에서 너만 좋아하니까 너도 나만 좋아해야 한다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울산으로 가족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OO에게 잘 있어야 한다며 손을 붙잡아 주지 못했지만, 만약 우리가 새끼손가락을 걸 때 OO가 오빠와 나는 동성동본이라고 자랑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OO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를 기다리다가 돈 벌어서 올 테니 기다리라고 어른처럼 맹세했을 것이다.
 

그 일탈된 동심이 OO의 도톰한 입술에서 비롯된 성적 호기심의 확대였는지, 그리 절실하지도 않은 이성의 반쪽을 소유코자 하는 본능의 발로였는지, 아니면 어른들을 흉내 낸 놀이였는지, 삼십여 년이 지나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다만, 여전한 것은 스무 살 때 만나서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꺼낸 Hh보다는 OO가 더 그립다.

아직도 OO를 떠올리면, 오래전 예능프로 "그래, 결정했어!"의 출연자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손을 피해 OO의 학교에 달려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상상력이 알콩달콩하여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하지만, 이불을 걷어차며 내 허벅지로 내려꽂히는 아내의 발길질에 내 가련한 동심은 풍비박산이 난다. 매번 풍비박산, 사랑이 그렇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기분 잘 안다. 총이 아니라 대포알 한방이 가슴을 뻥 뚫어버리는 이별통보를 하는 애인의 가혹한 눈빛을 피하며, 오늘따라 단골집의 음식이 싱거운 것 같고, 봄이 왔는데도 여전히 춥다고 옷은 따습게 입고 다니라는 걱정을 하며 딴청을 부린다 해도 불이 타들어가는 대포알의 심지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을 찾는 게 아니라 하늘이 무너지면 파묻힐 이불 속을 찾게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먹장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내게로 쏟아지던 막막하고 대포 맞은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날들이 네 번 있었다.
 

절망이라고 표현하기도 아까운 그 아픔의 깊이를 누가 측정할 수 있을까. 과거가 사라졌다. 미래도 사라졌다. 너 없는 현실은 이미 현실이 아닌 현실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나.
 

사랑은 사랑을 헌신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사랑을 배신한다. 헌신과 배신, 연인들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랑의 불편한 본질이며, 통과의례이며, 또 다른 사랑에 대한 체념이 되기도 하고 용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헤어지면 끝나는 줄 알았던 애인의 오래된 소식을 듣고 잘 살겠지하며 빙그레 웃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잊은 줄 알았던 옛 추억의 상념에 빠져 오늘 저녁에는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옛 애인을 만나 다시 사랑할 리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회한에 젖어 술 한잔 마셔주는 게 그리운 애인에 대한 성의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애인들에게 건배를.
 

사랑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사랑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짠해지는 탓에 꼭 조용필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얼마 전부터 사랑에 대한 기록을 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생겼다.
 

공감을 하든 안 하든, 굳이 정리에 의미를 두자면 세 가지의 정리를 쓰고 싶었는데, 첫번째 정리(定離)의 사전적인 뜻은 이별해서 헤어지기로 되어있는 것이고, 두번째 정리(情理)의 사전적인 뜻은 인정과 도리이며, 세번째 정리(整理)의 사전적인 뜻은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정리를 정리로 정리하고 싶었다.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아프다. 사랑이 아프고 참 아파서 말을 하지 못한다. 비밀이 많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처지는 다 다를 것이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며 사랑 때문에 울었던 지난날의 상처들을 위로받고 싶다.
 

앞에서 사랑의 불편한 본질 운운하며 글을 써놓은 이유도 상처가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을 내 방식대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죽을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죽음보다 더 큰 두려움이 어디에 있나. 상처받지 못할 용기가 없다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기록되어 질 내 어설프고 오만방자한 선언이다.


국화축제
김해문화재
 기획·특집
 2018 경남사제 Song Song Festival
 경제·IT
 꼭 알아야 될 법률 지식
 여론조사 샘플
 
  l   회사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웹하드   l   메일   l  
Copyright (c) 창원일보(주) All rights reserved. 경남 창원시 의창구 남산로 1번길 8, 동양빌딩 4층(편집국)-5층(경영국)
대표전화 055-212-0001 Fax: 055-266-0002 E-mail: 2120001@changwonilbo.com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제/복사/배포를 금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