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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경남체육회 사무처장 / 보건행정학박사 |
얼마 전 한 어르신 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뵌 자리였지만 어르신은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두 시간 가까이 지난 삶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말씀에는 자녀들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가 묻어났습니다.
어르신께는 올해 쉰을 갓 넘긴 큰딸과 작은딸, 그리고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5여 년 전, 큰딸이 세 살 무렵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주변에서는 "미쳤다, 정신이 나갔다"라는 손가락질이 따랐지만, 어르신은 작은딸과 아들까지 모두 학원에 보냈습니다. 스스로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자녀들만큼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그 선택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큰딸은 어머니가 초등학교 졸업장 뒷면에 남긴 "간호사가 되어라, 의사가 되면 더 좋겠다"는 글귀처럼 간호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를 이어가 의사로 성장했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큰 집까지 마련했지만 건강 문제로 어르신께서 미국에 가시는 것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작은딸은 캐나다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아들은 국내에서 든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며느리도 간호사로 성실히 일하며 가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 자녀는 부모를 향한 효심이 지극했습니다. 어르신은 자녀들이 서울과 해외에 떨어져 있어도 생일만 되면 직접 생일상을 차려 사진을 찍어 보내거나 영상통화를 통해 "오늘 네 생일이니 상 차려놨다. 마음으로라도 잘 먹어라"라고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그 정성을 잊지 않고 늘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찾아오곤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음식을 배달해 먹을 때조차 반드시 아버지께 "무엇을 드실지, 얼마나 시킬지"를 먼저 여쭙는다고 합니다. 일상 속 작은 모습에서도 부모를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잘 키운 자녀들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성공을 재산, 사회적 지위, 건강이나 명예로만 평가합니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진정한 성공이란 부모를 근심하게 하지 않고, 가정이 화목하며, 자녀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아닐까요. 부모가 헌신으로 자녀의 길을 열고, 자녀가 그 뜻을 이어 부모를 기쁘게 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성공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며 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50여 년 전 산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으로 와 셋방살이를 하며 동생의 학업을 지원해주신 형님이 계셨습니다. 형님은 늘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고, 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셨고, 저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공무원이 되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시던 형님의 눈물이 아직도 제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은혜 덕분에 저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의 헌신이 자녀의 미래를 열고, 자녀의 효심이 부모의 행복을 지켜줍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지혜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가족 간의 유대와 효의 가치를 되새기는 일은 더욱 절실합니다. 부모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자녀들, 그리고 그 사랑을 기억하며 뜻을 이루려는 우리의 노력.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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