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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 / 논설위원 / Saxophonist / 대구가톨릭대학교 창업경영학과 교수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가을이 오는 길목, 고향집 처마에 제비집을 짓고 있다. 4마리를 키우는 길조(吉兆) 제비를 보고 소싯적 감흥에 젖는다. 제비는 봄에만 둥지를 트는 줄 알았는데, 고향 창녕의 화왕산(火旺山) 능선아래 하가복 고향마을의 처마 밑에서 새 둥지를 얹고 있다. 열 가구가 옹기종기 사는 필자의 고향이다. 들녘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낟알이 서로 부딪히며 영그는 소리를 낸다. 논두렁 둑길 따라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감나무엔 주홍빛 열매가 햇살을 머금는다. 가을 하늘 아래, 제비는 낮게 선회하며 또 다른 둥지를 짓는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그래도 이곳 고향은 여전히 생태계가 살아 있는 마을, 생명이 순환하는 땅이라 다행이다.
그러나 고향의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칠순, 팔순을 넘긴 노인들이다. 예전엔 논마다 일손이 분주했지만, 이제는 점점 트랙터 대신 잡초가 논을 덮는다. 젊은 세대는 이미 도시로 떠났고, 고령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럼에도 제비는 다시 찾아온다. 농약을 뿌리지 않고 벌과 나비가 드나드는 밭을 지켜주는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수확량은 줄었지만, 그 대신 흙과 생명은 되살아나고 있다. 제비의 귀환은 자연과의 약속이 아직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요즘 농촌에는 `임대농업`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분다. 고령 농민들이 경작하기 어려운 논밭을 젊은 귀농인에게 빌려주고, 그들은 무농약ㆍ친환경 방식으로 작물을 재배추세다. 노년층은 임대료로 생활의 숨통을 트고, 청년 농부는 안정된 기반에서 농사를 이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순환 구조는 세대 간 상생의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화왕산 자락의 몇몇 마을에서는 유기농 쌀과 채소 브랜드가 생겨나고,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새로운 활력이 흐른다.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트듯, 젊은 세대가 농촌에 새로운 둥지를 짓고 있는 셈이다.
제비는 깨끗한 물과 흙, 그리고 따뜻한 사람이 있는 곳에만 돌아온다. 그 작은 새의 본능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의 고향은 아직 살아 있는가?" 고향의 가치는 단지 생산량이나 수익률로 계산되지 않는다. 무농약 밭에서 거둔 한 줌의 쌀, 바람에 일렁이는 벼 이삭, 저녁노을 아래로 날아드는 제비 한 마리. 그것이 진정한 풍요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다. 가을 들녘의 황금빛 풍광 속에서 필자는 다시 깨닫는다. 흙과 사람, 그리고 생명이 어우러진 그 조화가 곧 지속 가능한 미래의 씨앗임을. 제비가 돌아오는 고향, 그것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의 약속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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