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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논설위원 / Saxophonist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늘 말보다 실행이 신뢰를 만드는 법이다. 발표는 화려했지만 내용은 얇았다. 최근 정부가 공개한 각종 `팩트시트(Fact Sheet)`가 정책의 완결판처럼 홍보되고 있다. 숫자와 항목으로 채워진 문서가 `협상 타결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팩트시트는 본래 정책이나 협정의 개요를 정리한 설명자료일 뿐, 실행계획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언론이 이를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국민은 마치 모든 절차가 끝난 듯 착각한다. 결국 문서는 남지만, 행동과 제도는 따라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누가, 언제, 어떻게 실행하느냐`다. 정책의 진짜 완결은 문서가 아니라 이행 절차다. 아무리 근사한 문구라도, 누가 언제 어떻게 책임질지가 명시되지 않으면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 최근 한미 간 공동 팩트시트도 "발표는 됐지만 집행 권한이 불분명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는 외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행정 전반에서도 `발표는 빠르고, 집행은 늦고, 책임은 모호한` 구조가 반복된다. 팩트시트가 보여줘야 할 것은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의 구체화다. 그렇지 않으면 문서는 정책의 설계도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된다.
종종 숫자의 홍수 속에서 진실이 도통 흐려진다. 요즘 정책 홍보는 `팩트 중심`이라는 이름 아래 숫자로 채워진다. `몇 조원 투자`, `몇 명 혜택` 같은 수치는 눈에 띄지만, 그 안에 숨은 조건ㆍ일정ㆍ성과 평가는 보이지 않는다. 팩트가 많을수록 진실은 흐려지고, 형식은 화려할수록 실질은 비어간다. 언론은 보도자료를 통째 받아쓰고, 행정은 발표로 일을 끝낸 듯 안도한다. 그 사이 국민은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남긴다. 팩트시트가 투명성을 위한 장치로 출발했지만, 관리가 부실하면 신뢰의 그림자가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설명서`가 아니라 `실행설계서`다. 첫째, 정부는 발표 전에 이행 주체ㆍ시기ㆍ성과지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언론은 `발표됐다`는 단순 보도에 머물지 말고, 실제 집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셋째, 국민은 결과 중심으로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 팩트시트는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말보다 행동이, 발표보다 실천이 신뢰를 만든다. 정책의 완성은 문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된다. 팩트시트가 진짜 `팩트`로 남으려면 설명에서 실행으로 나아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http://www.changwonilbo.com/news/326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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