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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논설위원 / Saxophonist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말투는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식, 태도,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창(窓)이다.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느냐는 더 깊은 층위에서 인간의 품격과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관계 속에서 말을 주고받지만 정작 `말투의 힘`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요즘 사회를 보면 부드러운 설명보다 날 선 단정이 앞서고, 배려보다는 공격적 언사가 더 큰 음량을 얻는다. SNS 시대 이후 말투는 짧아지고, 즉흥적이며, 감정에 먼저 반응한다.
`~하자`는 제안조차 `~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바뀌고, 의견은 순식간에 심판의 언어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 환경이 우리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말투가 달라지면 인식이 달라지고, 인식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예컨대, 기업 미팅에서 "그건 불가능합니다"라는 말투와 "그건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가능합니다"는 말투는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전자는 사고를 닫고, 후자는 대안을 여는 태도다. 말투의 변화가 단순한 발음이나 억양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방향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녀에게 "왜 그걸 못 하니?"라고 말하면 아이의 마음엔 이미 실패 낙인이 찍힌다. 반대로 "어디에서 막혔을까? 같이 해결해 보자"고 하면부모는 같은 사실을 말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 말투는 관계의 기둥을 세우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
정치에서도 말투의 품격은 국가 수준을 가른다. 책임을 회피하는 언어, 상대를 몰아붙이는 언어,모든 사안을 흑백으로 나누는 언어는 공론장을 토론의 장이 아니라 전투의 장으로 만든다. 국민은 지도자의 정책보다 `말투`를 통해 그 사람의 진심과 능력을 먼저 판단한다. 말은 정책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치의 윤리와 품격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는 흔히 "말 한마디가 천 냥 빚 갚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더 필요한 말은 "말투 한 번이 천일 마음을 만든다"는 명제다.
말투가 바뀌면 관계의 온도가 변하고 조직의 분위기가 달라지며사회 전체의 대화 방식이 성숙해진다.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필자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붙이고 싶다. "말투의 수준이 곧 인식의 수준이다." 말투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타인을 어떻게 대하며, 자신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를 들려준다.
따뜻한 말투는 약함이 아니다. 정확한 말투는 공격이 아니다. 겸손한 말투는 굴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보고 듣는 세계에 대한 깊은 존중이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말`로 짓는다. 말투가 변하면 관계가 변하고, 관계가 변하면 삶이 변한다. 좋은 말투는 사소한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비추는 성찰적 태도다. 말투의 변화는 결국 나를 바꾸는 일과 같다.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말하는 나`를 바꾸려는 용기,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품격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7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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